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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개봉 스릴러서 엿본 9·11이후 미국인의 공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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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개봉 스릴러서 엿본 9·11이후 미국인의 공포

입력
2008.01.17 0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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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문화는 시대의 내면을 반영한다. 즉물성이 강한 영화 장르는 대중 심리와 작품 사이의 막이 특히 얇다. 따라서 스크린에서 펼쳐지는 허구는, 객석에 앉은 사람들의 현존일 수 있다. 지금 미국인의 속내를 엿볼 수 있는 영화 세 편이 상영 중이거나 개봉을 앞두고 있다. 각각 재난영화와 호러, 미스터리의 꼴을 갖춘 이 영화들에 투영된 것은 미국인의 ‘두려움’. 2008년, 세계 최강대국에서 사는 사람들이 느끼는 공포의 실체는 어떤 것일까.

■ “도대체 누가, 왜?” - ‘이유 없는 증오’에 대한 피해의식

24일 개봉하는 <클로버 필드> (감독 매트 리브스)는 할리우드 공식을 벗어난 색다른 재난영화다. 뉴욕을 쑥대밭으로 만든 엄청난 재난이 지나간 뒤, 현장에서 발견된 캠코더의 영상을 되돌려 보는 것으로 영화는 진행된다. 초반은 재난영화의 진부한 클리셰를 반복하는 느낌이다. 자유의 여신상은 목이 달아나고, 도시를 탈출하려는 사람들 앞에서 다리는 처참하게 무너진다.

이 영화의 차별성은 괴물, 혹은 공격하는 자의 실체가 드러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영화가 끝날 때까지, 관객은 희생자들이 왜 죽어야 하는지 모른다.

거기에 극도로 흔들리는 화면과 입자 굵은 화질은 마치 다큐멘터리를 보는 듯한 현실감을 더한다. 아비규환으로 변한 뉴욕 모습과 CNN 뉴스화면 같은 스크린, ‘누가 어떤 목적으로’ 공격하는지 알 수 없는 상황. 바로 9ㆍ11 테러에 대한 데자뷰, 미국인들의 뇌 속 깊이 뿌리내린 두려움의 원형질이다.

10일 개봉한 <써티데이즈 오브 나이트> (감독 데이비드 슬레이드)에서도, 사람들은 뱀파이어가 자신들을 공격하는 이유를 끝까지 알지 못한다. 영화평론가 오동진씨는 “근원을 알 수 없는 혼란에 대한 공포, 그것이 자신들에게서 비롯된 것인지 아니면 밖에서 온 것인지조차 모른다는 사실에 대한 두려움”을 영화를 통해 표출되는 미국인들의 공포로 해석했다.

■ 폐쇄된 공간 속의 광기 - 미국 사회의 음울한 풍경

10일 개봉한 <미스트> (감독 프랭크 다라본트)는 미국 사회에 잠재된 또다른 공포의 본질을 보여준다. 폐쇄된 공간에서 얼굴을 드러내는 인간의 이기심과 잔혹성, 불신과 반목이라는 괴물이다.

메인주의 한 마을이 알 수 없는 안개에 휩싸이고, 사람들은 괴생명체의 공격을 피해 슈퍼마켓 속으로 대피한다. 하지만 사람들은 진짜 두려운 것은 슈퍼마켓 ‘밖’이 아니라 ‘안’에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우왕좌왕하던 사람들은 종말론과 인종차별적 선동에 휩쓸리고, 잔혹하게 서로를 살해하기 시작한다. <써티데이즈…> 도 도망갈 곳이 없는 공간에서 뱀파이어보다 무서운 것은, 바로 곁에 있는 사람임을 보여준다.

폐쇄된 공간 속의 인간이 얼마나 극단적으로 변할 수 있는지, <큐브> <패닉룸> 등의 영화를 통해 경험한 바 있다. 그러나 <미스트> 와 <써티데이즈…> 속의 폐쇄성과 광기는, 컬트적 소재가 아니라 현재 미국 사회의 은유라는 점에서 의미가 남다르다.

9ㆍ11 테러 이후 나타난 외부세계에 대한 배타성, 기독교 근본주의, 맹목적 애국심 등이 얼마나 무서운 괴물인지, 이 영화들은 괴생명체와 뱀파이어의 괴성을 통해 역설한다.

오동진씨는 “주목할 점은 영화 속 인물들이, 괴물에 대한 두려움에도 불구하고 격리된 공간을 벗어나려 한다는 것”이라며 “진짜 두려운 것은 밖이 아니라 내부에 있다는 사실에 대한 미국사회의 영화적 자성으로 볼 있다”고 평가했다.

유상호 기자 sh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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