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권 교체기 '정보기관 수난사'가 재연될까. 김만복 국정원장의 기밀 누설 사건으로 인해 정권이 교체되면 정보기관이 어김없이 정치적 사건에 휘말렸던 전철이 반복되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실제 문민정부에서 국민의 정부로 정권이 교체된 뒤 국정원은 '북풍' '총풍' '안풍' 사건으로 엄청난 타격을 받았다. 북풍과 총풍은 1997년 대선 직전 김대중 새정치국민회의 후보 비방 기자회견, 오익제 편지사건, 휴전선 총격 도발 사건 등을 통해 공안 정국을 조성, 이회창 한나라당 후보에 유리한 국면을 만드는데 국정원의 전신인 안전기획부가 직ㆍ간접적으로 관여했다는 사건이다.
안풍은 안기부가 예산 1,000여억원을 전용해 신한국당 의원들의 1996년 총선 자금으로 지원했다는 사건. 이로 인해 권영해 전 안기부장과 김기섭 전 안기부 운영차장 등이 잇따라 기소됐다. 안풍 사건 등 일부 사건에서는 무죄 판결이 내려졌지만 국내 최고 정보기관의 위상은 땅에 떨어졌다.
국민의 정부에서 참여정부로 정권이 이양된 후에는 대북송금 사건이 터졌다. 수사결과 국민의 정부가 남북정상회담 성사 대가로 1억 달러를 북한에 불법 송금하는 과정에 국정원이 송금을 주도했다는 정황이 포착됐고, 임동원 전 국정원장, 최규백 전 국정원 기조실장은 법정에 섰다.
불법도청 사건 역시 문민정부, 국민의 정부 시절 국정원의 치부를 드러낸 사건이었다. 이 사건들은 정보기관이 기회 있을 때마다 외치던 '정권으로부터의 독립'이 얼마나 현실과 동떨어진 구두선이었는지를 여실히 보여줬다.
김 원장 사건은 참여정부와 국정원간 관계를 확인해 볼 수 있는 시금석이 될 전망이다. 국정원은 "참여정부 하에서 정보기관의 정치 개입은 있을 수 없다"고 단언했고 실제 정권과 정보기관 간 유착 정황도 거의 포착되지 않았다. 김 원장 사건 역시 현재까지는 '수장 1인의 어처구니 없는 돌출행동' 성격이 짙어 보인다.
그러나 검찰 수사가 시작되고 의혹이 확대될 경우 사정이 달라질 수도 있다. 실제 한나라당에서는 "대선 하루 전에 국정원장이 방북한 진짜 이유가 뭐냐", "북측 인사와의 면담록에는 공개되지 않은 다른 내용도 있을 것"이라며 공세를 펴고 있다.
만일 검찰 수사 과정에서 김 원장 방북을 둘러싼 미심쩍은 정황이 포착될 경우 이번 사건은 그 성격이 완전히 뒤바뀔 가능성도 있다. 김 원장 본인의 '패가망신' 수준을 넘어 국정원과 참여정부 전체의 위상이 다시 한번 추락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것이다.
박진석 기자 jseo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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