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일 한국외국어대를 마지막으로 주요 대학의 2008학년도 대입 정시 논술고사가 마무리 됐다. 각 대학이 논술고사 폐지를 공언하는 등 내년부터는 논술 시험에도 큰 변화가 예상된다. 하지만 올해 처음 시행된 ‘통합 논술’의 방향을 분석해 보는 것은 향후 논술 출제의 큰 흐름을 짚어볼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2회에 걸쳐 주요 대학의 기출 문제를 점검해 본다.
서울대
서울대 논술의 성패는 시간 배분에 달려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고사 시간을 300분으로 늘렸지만 자연계열의 경우 모의고사 때보다 제시문이 많아지고 소문항 수도 늘어나 상당수 수험생이 시간 부족을 호소했을 것으로 보인다.
인문계열은 모의고사와 마찬가지로 수리적 사고를 필요로 하는 문항이 다시 등장했다. 3번 문제가 대표적이다. 물질적 풍요와 행복 정도가 반드시 비례하지 않는 까닭을 로그함수와 ‘국민만족도지수’라는 새로운 개념을 토대로 설명할 것을 요구했다. 개념에 대한 정확한 이해와 수학적 지식의 조화가 관건이었다.
자연계열은 ‘온실효과’와 ‘지구 온난화’ 등 공통 과학 과정에서 배운 교과 내용을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논제는 제시문의 수리적ㆍ과학적 원리를 재구성해 이를 논제에 적용시키고, 논리적ㆍ통합적으로 추론할 수 있는지를 평가하는데 주안점을 뒀다. 논리를 전개할 때 ‘도표, 그림, 수식’ 등의 적절한 활용 능력도 계열 특성을 고려한 중요 평가 요소다. 예를 들어‘체지방’을 소재로 한 2번 문제는 복잡한 인체 시스템을 회로로 단순화해 설명할 수 있는 통합적 사고능력이 수반돼야 한다.
연세대
인문계열은 ‘민족의 정체성’이라는 큰 주제 아래 총 3문제를 출제했다. 너무 어렵거나 쉽지 않아 변별력을 가질 수 있는 수준으로 균형을 맞췄다. 특이한 점은 제시문과 관련된 표의 해석을 요구했는데, 수리적인 이해력과 자료 분석 능력을 평가하기 위한 의도로 판단된다. 단 복잡한 수학적 계산이나 공식을 필요로 하지 않아 공교육의 틀을 벗어나지 않으려 애쓴 흔적이 역력했다.
자연계열은 크게 수학 1문제, 과학 2문제 등 총 7개의 논제를 해결해야 했다. 수학 교과과정의 기본 지식을 원유 유출사고라는 현실에 모사한 모델링을 제시했다. 수험생들의 창의적 사고력과 사고의 유연성을 평가하려는 목적에서다.
과학 문제는 각각 ‘물리ㆍ지구과학’, ‘화학ㆍ생물’ 통합 문제가 출제됐는데, 제시문은 교과서에서 배운 과학 지식과 관련된 주제를 다뤘으며 전반적으로 평이한 수준이었다. 다양한 영역에서 소재를 선택해 하나의 현상을 바라볼 때 다양한 각도에서 유추하는 응용 능력을 요구했다.
고려대
인문계열의 주제인 ‘신뢰의 유형과 역할’은 고교 교과서에 있는 내용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까다롭지도 않았다. 긴 제시문을 간략하게 요약하거나 특정 제시문의 논지를 파악한 후 그것과 대비해 다른 제시문(시)을 해설하는 등 발문 형식이나 성격도 모의 시험 형태를 유지했다.
통계자료를 해석하는 3번 문제는 ‘통합의 정도 및 난이도 완화’라는 대학 측 방침에 따라 두 유형 간의 차이에 내포된 의미를 중심으로 표의 내용을 꼼꼼하게 분석하는 것이 고득점의 열쇠였다.
자연계열은 통합 교과형인 문제에 비해 논제는 ‘설명, 비교, 특정 값 구하기’ 등으로 단순한 형태를 취했다. 출제 범위는 선택 과목의 문제점을 고려해 과학 과목의 경우 과학Ⅰ을 기반으로 하되, 선행지식에 의존하지 않고 창의성을 발휘할 수 있는 문제에 한해 과학 Ⅱ의 내용을 포함했다. 교과에서 중요하게 배운 원리가 대부분이어서 낯설게 느낀 수험생은 없었을 것으로 보이지만 전 문항이 타 영역과의 통합에 중점을 둔 것이 특징이다.
서강대
지난해와 달리 문항 수가 2문항으로 줄어 답안 분량과 고사 시간도 감소했다. 인문계열 2번 문제는 투르니에, 들뢰즈, 칸트와 데카르트와 같은 대철학자들의 고전에서 공통된 주장을 찾고, 주장이 서로 양립가능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 설명을 요구했다. 고등학교 ‘윤리와 사상’에서 다루고 있는 주제이지만, 평소 관심 깊게 공부하지 않은 학생들은 어렵게 느낄 수 있었다.
자연계열은 교과 과정의 주요 단원에 치중하기 보다 수학 및 과학 교양 분야에서 주제를 선택했다. 이는 수험생의 기본적인 논리력과 표현력을 종합적으로 측정한다는 자연계열 논술 출제 방침에 따른 것이다.
따라서 제시문을 기초로 일관된 논리 전개 능력과 사례를 통한 표현 능력 평가에 초점을 맞췄다. 교과 내용을 거의 반영하지 않은 과학 문제에 비해 수학은 수학Ⅰ 과정의 ‘행렬’, 수학 기초 지식에 해당하는 ‘구면 기하학’을 제재로 출제해 교과 반영도가 높았다.
김이삭 기자 hir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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