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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악인 이용대의 나는 오늘도 산에 오른다] <15> 등산장비 신주단지 모시듯… 사고 나도 "장비는 괜찮나" 진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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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악인 이용대의 나는 오늘도 산에 오른다] <15> 등산장비 신주단지 모시듯… 사고 나도 "장비는 괜찮나" 진풍경

입력
2008.01.17 0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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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나 지금이나 산쟁이들은 장비 욕심이 대단하다. 장비가 턱없이 부족했던 1960~70년대는 더욱 그랬다. 장비를 소중하게 다루고 아끼는 것을 계율처럼 여겼다. 어쩌다 자일을 밟거나 깔고 앉으면 선배로부터 엉덩이에 불이 날 정도로 얼차려를 받았다.

어느 해 여름 설악산 울산암으로 등반을 갔다. 선등자 김진원(보성고OB)이 리딩을 하면서 순조롭게 두 번째 마디를 끝내고 세 번째 마디의 오버행 턱을 넘어서다가 갑자기 10여m를 추락했다. 그는 허공에 대롱대롱 매달려 빙글빙글 회전하다 멈춰 섰다.

이를 지켜보던 선배가 “야! 진원아. 자일 상한데 없니?”라고 소리치면서 추락자의 부상여부보다 자일의 손상여부를 먼저 확인했다. “형, 사람보다 자일이 더 중합니까? 부상부터 확인하는 게 순서 아닌 가요?”

그러나 이날 김진원은 추락 지점에서 횡재를 한다. 뒤집힌 자세로 전면의 바위 구멍을 바라보다가 보랏빛 광채의 천연 자수정을 발견한 것이다. 그는 눈을 의심했다. 추락의 충격으로 인한 착시일 수 있어서 다시 확인했다. 그러나 그 바위구멍 속에서는 분명 어른 허벅지 굵기의 천연 자수정이 빛을 발하고 있었다. 추락의 노고를 보상하듯 울산바위 산신령이 그에게 큰 선물을 한 것이다.

그날 저녁 계조암 옆 캠프지에서 대원들은 뜻밖의 전리품을 놓고 분배방식을 논의했다. 팀 전체의 소득이니 공정한 방식으로 분배하자는 의견과 최초 발견자의 선취특권을 인정하자는 의견이 대립했다. 결국 수정은 최초 발견자에게 돌아갔고 백수인 그는 장비 구입을 위해 당시 주택공사의 중견간부로 있던 선배에게 넘겼다. 그 후 그는 한국남극탐험대(대장 홍석하)의 일원으로 허 욱, 이찬영, 허정식, 권오환과 함께 남극 최고봉 빈슨매시프에서 한국인 최초의 등정을 이룩한다.

고물 장비 수집에 혈안이었던 터프가이 전수철(재미). 그의 별명은 ‘딱쇠’다. 그는 기존 루트에 불필요하게 설치된 장비를 회수하는데 남다른 솜씨를 보유했다. 클린클라이밍(Clean Climbing)을 위한 바위길 정리를 명분으로 내세웠지만, 속내는 회수한 장비를 자기 것으로 챙기자는 것이었다.

이런 일로 그는 하켄을 많이 사용하는 산쟁이들로부터 따가운 눈총을 받았으나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가 어느 날 새벽 전화를 했다. “형님, 오늘 도봉산에서 미군 특수부대 애들이 산악훈련을 합니다. 걔들이 하켄을 바위에 박으면 버리고 간다니 왕건이(하켄) 빼러 갑시다.”

우리 둘은 의기투합해 천축사 위 연습바위에서 훈련을 끝낸 미군이 사라지자 20여 개의 군용 하켄을 뽑아왔다. 그는 바위를 시작하기 전에 바위 아래를 서성대며 보물찾기에 분주하다. 다른 등반자가 실수로 떨어뜨린 슬링, 카라비너, 하켄 등을 줍기에 혈안이다. 이런 식으로 수년간 모은 카라비너가 50개 정도라 했다. 장비점 문 앞에 얼씬대지 않던 그는 남보다 갑절 이상의 장비를 지니고 있었다.

지금은 미국에서 산에 다니는 그가 몇 년 전 귀국했을 때 구곡폭포에서 30년 만에 함께 줄을 묶고 빙벽등반을 한 적이 있다. 시원스레 선등하는 윤재학의 탁월한 기량을 극찬하면서 카라비너 몇 개를 그에게 선물하고 돌아갔다. 천하의 구두쇠가 후배를 배려하는 광경을 보고 세월이 사람을 변하게 할 수 있다는 사실에 내심 감탄했다.

울산암에서 추락하면서 횡재한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그 반대도 있다. 1980년대 국산 등산화의 선두주자 ‘레드 페이스’의 CEO 최성수. 그는 원래 국세청에 적을 둔 세리였으나 공직생활을 그만 두고 84년 히말라야 쟈뉴(7,710m) 북벽(대장 김기혁 양정고OB)을 향해 인생항로를 수정한다. 원정훈련의 일환으로 출국 몇 개월 전 울삼암을 등반했다.

울산암 중앙 벽 세 마디를 오른 뒤 넓은 테라스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기 위해 배낭을 벗어 바위에 올려놓는 순간, 실수로 배낭을 놓쳐 버렸다. 허공을 향해 사라지는 빨강색 배낭을 망연자실하게 바라보는 그의 얼굴이 백지처럼 창백해졌다.

“형, 큰일 났습니다. 배낭에 원정 비용 500만원이 현찰로 들어 있습니다. 어쩌면 좋아요?”

우리는 서둘러 하강, 배낭이 떨어진 지점을 뒤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행방이 묘연했다. 모두들 지쳐있을 무렵, 울산암 밑에서 야영하는 한 무리의 대학 산악부 학생(관동대 산악부)이 있길래 배낭을 물어보았다. 그때 한 여학생이 텐트에 들어가 배낭을 들고 나왔다. 묵직한 화폐 뭉치가 온전하게 들어있었다.

아마 배낭을 찾지 못했다면 그는 하얀 산에 대한 열망을 접었을 것이고 인생행로도 조금은 달라졌을 것이다. 그가 직장과 맞바꾼 원정의 성과는 자누 북벽 동계 초등정이라는 영예였다. 등반장비가 절대 부족하고 어렵던 시절 헝그리 정신으로 산을 오르던 그들은 이제 이순을 턱 앞에 둔 초로의 모습으로 변했다.

코오롱등산학교 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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