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기고/ 공교육이 살아야 하는 이유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기고/ 공교육이 살아야 하는 이유

입력
2008.01.15 06:10
0 0

가끔씩 전주 시민들이 즐겨 찾는 모악산을 오른다. 그런데 방학 중인데도 그곳에서 중ㆍ고등학생들을 찾기가 쉽지 않다. 대학생들도 마찬가지다.

공부하러 학원에 갔기 때문이고, 컴퓨터 앞에서 PC게임에 열중하고 있기 때문이며, 텔레비전 앞에서 연예인들의 말장난과 우스꽝스런 행동을 구경하고 있기 때문이다. 괜찮은가? 방법이 없을까?

부모님 세족식을 하고 감상문을 써 오라는 수행평가를 내 주었다. 거의 모든 아이들이 감상문을 냈다. 감상문 중에는 수행평가가 아니었다면 하지 않았을 것인데 쑥스럽고 귀찮음을 무릅쓰고 할 수밖에 없었노라고 쓴 것도 있었다.

그리고, 하지만, 막상 세족식을 마치고 나니 좋은 경험이었다는 생각이 들었고 오랜만에 부모님을 기쁘게 한 것 같아 행복하였으며 이러한 수행평가를 내준 것에 감사하다는 말이 적잖게 씌어 있었다.

발표력을 기르고 생각을 공유하기 위한 '3분 말하기'나 '부모님 자서전 쓰기'도 아이들이나 학부모님들에게 좋은 평가를 받았던 수행평가 과제였다.

동료 체육 선생님께서 학생들에게 어느 산이든 등반을 하고 정상에서 찍은 사진과 함께 감상문을 제출하라는 수행평가를 내 주는 것을 보았다. 모두들 착실하게 과제를 수행하여 제출했었다.

음악 선생님은 가족끼리 노래하고 그 테이프를 제출하라는 수행평가를 내 주면 어떨까? 이런 저런 이유로, 또 미루고 미루다가 못한 일을 수행평가를 계기로 해 볼 수 있다면 대단한 것 아닐까?

그런데 그런 과제가 꼭 교과목과 관련 지을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수학 선생님이 부모님께 편지 쓰기 과제를 내 주어도, 과학 선생님이 유서를 써 오도록 하는 수행평가를 낸들 무슨 문제가 있겠는가? 하기 전에야 아이들의 투덜거림이 있을 순 있겠지만.

운동선수도 경기가 있기 때문에 열심히 훈련하는 것처럼 학생들은 작게는 중간고사 기말고사를 위해서, 크게는 대학입시, 더 크게는 사회에 진출하여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해 열심히 공부하는 것이다.

교육에서 평가는 그래서 매우 중요하다. 좋은 평가를 받기 위해 준비하는 과정에서 아이들이 성장하기 때문이다. 평가가 교육의 방향과 질을 결정하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수행평가가 더 큰 효력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반영비율을 높일 필요가 있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대학입시에서 내신성적 비중이 최소한 현재 상태를 유지해야 한다는 점이다. 대학입시에서 내신 비율을 낮추는 일은 공교육을 망치는 일임과 동시에 인성교육을 포기하겠다는 말과 다를 게 없다.

더불어 체력장을 부활시켜야 하고, 음악 미술도 대학입시에 반영해야 한다. 크든 작든 교육의 목표가 삶의 질 향상을 목적으로 해야 하고, 삶의 질은 음악 미술 체육과 밀접한 관계가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현재 우리의 교육은 어떠한 상황인가?

새 정부가 들어서면서 대학입시의 틀을 새롭게 짜려고 한다. 새로운 방안을 검토하는 것에 대해 가타부타 이야기하고 싶지는 않다. 그러나 기본은 공교육을 살리는 방향이어야 하고 공교육을 살리기 위해서는 최소 현재만큼의 내신 반영이 필요하며, 교사들은 보다 실질적이고 교육적인 방법의 수행평가로 아이들의 바람직한 성장을 도와 주어야 한다는 점이다.

오늘 아침 내 말에 순종하지도 않고 말도 부드럽게 하지 않던 딸이 담임선생님에게 전화가 오자 순한 양이 되었다. 요즘 학생들은 등산을 싫어하면서도 선생님이 가자고 하면 말없이 따라 나선다. 부모님 말은 안 들어도 선생님 말은 잘 듣는다. 공교육이 살아야만 하는 이유다.

<저작권자>

권승호 전주영생고교 교사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