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 박근혜 전 대표가 10일 이명박 당선인측을 겨냥 “밀실 사당화 공천을 하려고 하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막겠다”고 언명함으로써 4월 총선을 앞둔 한나라당 공천 전쟁에서 배수진을 쳤다. 박 전 대표의 ‘수단과 방법’에는 ‘한나라당 탈당’ 카드도 분명히 들어 있다는 게 측근들의 중론이다.
박 전 대표는 언명에서 대체로 복선을 깔지 않았다. 그의 언명은 늘‘한다면 한다’는 식이었다. “박 전 대표가 움직이면 대구경북과 충청을 아우르는 신당으로 총선에서 충분히 승산이 있다”는 탈당 시나리오도 있다. 그런 면에서 박 전 대표측에게 탈당은 단순한 압박용이 아니라 언제든 현실화될 수 있는 카드이다.
하지만 이 카드를 언제 뽑느냐는 문제가 있다. 탈당 카드가 폭발력을 지니려면 명분이 있어야 한다. 박 전 대표측이 예상보다 일찍 배수진을 치고 나선 이유도 명분 때문인 것 같다.
3월에 일괄 공천이 발표되고 그 결과, 자파 세력이 대거 숙청됐을 때 뒤늦게 “탈당”운운 해봐야 “너무 늦다”는게 박 전 대표측 판단이다. 한 관계자는 “낙천자들이 탈당해서 성공한 전례가 없다”고 말했다. 다시 말해 탈당을 하더라도 공천 발표 이전에 명분을 틀어쥐고 나가야 한다는 이야기다.
박 전 대표측의 으름장에도 이명박 당선인측은 일단 무대응 기조를 고수할 태세다. 그렇게 되면 박 전 대표측으로서는 다음 수순을 밟아야 하는데 다음 수가 마땅치 않다. 박 전 대표측 내부에서 “너무 일찍 배수진을 친 것이 아니냐”는 얘기가 나온 것도 이 때문이다.
하지만 박 전 대표측은 이 당선인측이 언제까지 무대응 기조를 유지할 수는 없을 것으로 본다. 공천이란 민감한 현안에 대해, 박 전 대표측이 배수진까지 쳤는데 이 당선인측의 무대응을 한다면“나갈테면 나가보라”는 의미로 읽힐 수 밖에 없다.
박 전 대표측 한 관계자는 “그렇게 되면 이 당선인의 아쉬울 때는 ‘국정의 동반자’라고 했다가 이제 와선 입을 씻는다는 여론이 형성되고 명분도 쌓여 나갈 수 있다”고 말했다. 어느 시점에 이르면 이 당선인측도 양단간의 결단을 내릴 수 밖에 없을 것이란 얘기다.
박 전 대표측은 일단 11일 이방호 사무총장이 단장을 맡고 있는 총선기획단에 대해 활동 영역과 기한을 대폭 축소할 것을 요구했다. 공천심사위를 빨리 구성해 공천에 돌입하자는 얘기다.
이는 “박 전 대표측이 그렇게 난리 치는데 굳이 들어주지 않으려는 이 당선인측도 너무 하는 것 아니냐”는 당 안팎 여론 형성도 함께 노린 제안이기도 하다. 명분을 쥐느냐, 주느냐를 둘러싼 양측 싸움은 이제부터 시작인 듯하다.
이동훈 기자 dh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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