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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현모씨 '세종과 정조의 리더십 스타일 비교' 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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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현모씨 '세종과 정조의 리더십 스타일 비교' 논문

입력
2008.01.15 0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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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문예부흥을 일으킨 개혁군주’ 조선의 4대 임금 세종(世宗 ㆍ재위 1418~1450)과 22대 정조(正祖ㆍ재위 1776~1800)에 대한 역사가들의 공통된 평가다.

최근 두 사람을 소재로 한 TV 드라마가 인기리에 상영되고 있어 통치방식에 대한 비교도 관심사다. 박현모 세종국가경영연구소 연구실장은 최근 ‘오늘의 동양사상’ 가을ㆍ겨울호에 발표한 논문<세종과 정조의 리더십 스타일 비교> 에서 두 임금의 통치 스타일을 분석했다.

두 사람 모두 ‘보지 않은 책이 없을 정도’의 호학(好學)군주라는 공통점에도 불구하고 ‘듣기 좋아하는 임금’(세종)과 ‘말하기를 좋아하는 임금’(정조)으로 스타일은 상반됐다.

■ 세종, 뒤에서 미는 리더십 vs 정조, 앞에서 끄는 리더십

논문은 세종의 리더십을 ‘뒤에서 미는 방식’으로 정조의 리더십을 ‘앞에서 끄는 방식’이라고 규정한다. 세종은 문제에 부딪히면 왕 자신의 처지를 설명하고 신료들의 동참을 요청하는 방식을 택한 반면, 정조는 어전회의를 주도하면서 신료들의 발언권을 견제하는 데 진력했다는 것이다.

말투부터가 대조적이었다. 세종은 신하들의 비판이 아무리 날카로워도 일단 긍정하면서 대화를 시작하는 스타일이었다. 가령 재위 말년 궁궐 내 불당건립 문제로 정인지 등 신하들의 비판이 잇따르자 “경들의 말을 합하여 간(諫)하니, 내가 매우 아름답게 여긴다”고 말한 뒤 “그러나 말을 따를 수 없다”라고 답하는 식이었다.

반면 논쟁을 즐겼던 정조는 신하들과 대화를 나눌 때 말 첫머리부터 “그렇지 않다” “결단코 그렇지 않다” 심지어 “경들이 하는 일이 한탄스럽다”는 말을 서슴지 않았다. 즉위초 검토관 이유경이 온고지신(溫故知新)의 의미에 대해 “옛 글을 익혀 새 글을 아는 것을 말합니다”라고 해석하자 정조는 “그렇지 않다. 대체로 초학자들이 그렇게 보는 수가 많다”며 공개적인 면박을 줄 정도였다.

정조는 또한 차대(次對)나 경연 등에서 신하보다 더 많은 말을 하는 ‘다변(多辯)’의 정치가였다. “전교(傳敎)를 내릴 때마다 한 종이의 열 줄에 정녕히 반복하여 조금도 남겨두지 않고 말을 번거로이 되풀이 한다”는 실록의 비판이 이를 입증한다.

반면 세종은 말수가 적었으며 신하들에게 의제를 던져주고 “함께 의논하여 아뢰라”는 식이었는데 말끝마다 “경들의 의견을 말해보라”며 직언을 요청했다. 싱크탱크인 집현전과 규장각의 운용방식도 달랐는데 세종이 과제를 집현전 학사들에게 던져놓고 기다리는 스타일이었다면 정조는 자신이 전면에 나서서 직접 문신을 가르치고, 숙제검사를 하고, 시험을 치기도 했다.

집현전 학사들이 중요한 정치적 문제에 의견을 내고 관여한데 비해, 규장각 신료들이 중요한 정치적 쟁점과 정책과제들에 대해 일정한 거리를 둔 것은 그런 맥락에서다.

■ 정치 기반 차이-정적 없었던 세종, 노론이 거슬렸던 정조

두 임금의 통치 스타일의 차이는 상반된 정치적 기반에 기인한 것이라고 논문은 분석한다. 부왕 태종에 의해 공신과 외척 등 개혁 장애물들이 제거된 채 즉위한 세종과 달리, 정조는 사도세자의 아들이라는 약점에 더해, 김귀주와 홍인한으로 대표되는 두 외척세력이 건재한 상태로 왕위를 계승했다.

이런 정치적 환경 아래 정조는 국왕이란 요순(堯舜)처럼 정치의 한가운데서 정치의 중심을 세우는 존재로 규정, 국가란 국왕 개인의 것이 아니라 조상의 것이라고 주장하는 노론신하들의 발언권을 견제했다.

반면 세종은 태종ㆍ조의 정치적 격변을 거치면서 보신을 꾀하는 신료들의 침묵과 소극적인 분위기를 문제로 파악하고 군신공치(君臣共治)를 꾀했다.

속내를 드러내지 않는 자기통제력이 강한 세종과 사도세자능을 이장할 때 사초를 부여잡고 울부짖을 정도로 격정적이었던 정조의 성정의 차이도 리더십의 차이를 유발한 원인이라고 논문은 덧붙인다.

박 실장은 “세종이 회의를 통해 좋은 아이디어를 수렴하는데 초점을 맞췄다면, 정조는 토론과정에서 개혁의 정당성을 설파하고 신하들을 가르치는데 초점을 두었다”며 “세종이 정치적 리더십에서 뛰어났다면 정조는 날카로운 질문과 탁월한 해석을 통해 걸출한 학자를 배출한 지적 리더십을 보인 인물”이라고 평했다.

이왕구 기자 fab4@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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