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회사원 강모(36)씨는 중국의 ‘중’자만 들어도 부아가 치민다. 지난해 10월 은행에서 가입한 중국펀드의 수익률이 최근 -15%로 곤두박질했기 때문이다.
그는 “아파트 중도금으로 쓸 돈 3,000만원을 4개월 가량 묻어두고 싶다고 하자 은행 직원이 주저 없이 중국펀드를 권했다”며 “잠깐 오르는가 싶더니 계속 떨어져 환매도 못하고 얼마 전 따로 빚을 냈다”고 푸념했다.
대출이자도 계속 올라(7%대) 강씨의 실제 손해는 -22%에 달한다. 그는 펀드 가입 당시 ‘좋은 상품에 가입해줘 고맙습니다’라는 은행의 문자메시지를 아직도 간직하고 있다.
# 주부 김모(32)씨도 은행이 야속하다. 지난해 6월 돌잔치 이후 손에 쥔 목돈에 매달 10만원을 더해 아기를 위한 적립식 펀드를 들었는데, 최근 수익률이 -20%라는 통보를 받았다.
그는 “높은 수익률을 자랑하며 가입을 유도했던 때와 달리 ‘기다려보라’는 성의 없는 설명과 어렵고 복잡한 펀드 운용보고서는 차라리 없는 게 낫다”고 불평했다.
지난해 펀드 광풍에 힘입어 엄청난 펀드 판매수수료 수입을 올린 은행들이 증시불안에 따른 수익률 급락에 좌불안석이다.
13일 금융권에 따르면 국민ㆍ우리ㆍ신한ㆍ하나은행 등 4대 시중은행의 지난해 펀드 판매 잔액(평가액 기준)은 31조2,060억원으로 2005년(20조4,258억원)보다 53%나 급증했다. 은행 예금(5~6%)의 5~6배에 달하는 높은 수익률이 이유였다.
실제 지난해 국내펀드는 평균 35.26%, 해외펀드는 평균 29.54%(주식형 기준)의 수익률을 올렸다. 분위기에 편승해 ‘너도나도’ 펀드 가입이 늘었고, 은행 창구에서도 예ㆍ적금보다는 ‘펀드 밀어주기’에 힘썼다.
문제는 지난해 말 ‘소문난 펀드 잔치’에 막차를 탄 가입자(중국펀드가 대표적)와 당초 예상과 달리 손실이 난 펀드 보유자(일본펀드 등)다.
이들은 곤두박질치는 수익률에 ‘나만 잃었다’는 상대적 박탈감까지 더해, 사후관리를 소홀히 해온 은행의 무성의를 질타하고 있다.
은행도 골머리를 앓고 있다. 투자 위험은 고객의 몫이라고 항변하고 싶지만, 펀드 가입 당시 시장상황이 좋아 가입을 종용한데다 수수료 수입도 짭짤하게 챙겨먹었으니 책임을 면키가 어렵다.
게다가 자칫 은행에 대한 신뢰가 떨어지는 ‘평판 리스크’도 고려해야 한다.
아직까지 은행의 펀드 사후관리는 구색 맞추기에 불과하다. 대부분 은행들이 운용보고서를 발송하고 있지만, 내용이 어렵고 복잡해 되려 짐만 된다는 게 일반 가입자들의 불만이다.
그나마 가입 당시 고객이 정한 목표 수익률이 달성됐을 때 보내주는 휴대폰 문자메시지가 사후관리의 전부다. 손실이 난 경우엔 속수무책으로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하나은행이 개발한 사후관리 시스템 ‘i4u’ 정도만 조기경보 기능을 갖고 있다. 하나은행은 “가입 펀드의 수익률이 마이너스(-)로 바뀌면 단계별로 고객에게 통보해 상담을 받을 수 있도록 한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이것 역시 수동적인 방편이다.
펀드가 대세가 된 만큼 일반 가입자 역시 고액 금융자산가를 대상으로 하는 프라이빗뱅킹(PB)에 버금가는 서비스가 제공돼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가입자의 적극적인 자세도 필요하다.
이정걸 국민은행 아시아선수촌PB센터 팀장은 “운용보고서 외에 전체적인 시장을 조망할 수 있는 정보 정도는 제공돼야 한다”며 “가입 당시 판매직원의 이름과 연락처를 메모해뒀다가 수시로, 혹은 주기적으로 연락하면 시장정보뿐 아니라 펀드 자금의 흐름도 파악할 수 있다”고 조언했다.
고찬유 기자 jutda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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