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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장의 광원들, 지하 9100m 아래서 캐내는 뜨거운 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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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장의 광원들, 지하 9100m 아래서 캐내는 뜨거운 희망

입력
2008.01.15 0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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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광 입구에서 수직으로 900m 내려가야 도착하는 캄캄한 막장, 해수면 보다 300m나 낮은 곳에 뿌연 먼지와 후텁지근한 수증기가 가득하다. 안전등에서 뻗어 나오는 빛 줄기가 절벽같이 막아선 암흑 먼지와 힘을 겨루고 있다.

“발파! 잠시 대피 하세요.” 고함과 “쿵”하는 진동음이 이어지자 그나마 보이던 것들이 퍼지는 탄 가루 속으로 잠수하듯 그 형체를 감춘다. 그리고 한참 시간이 흐른 후 땀으로 범벅이 된 채 전투처럼 채탄을 하는 광부들의 모습이 다시 보이기 시작 한다.

이른 아침 땅속부터 분주한 강원도 태백시 석탄공사 장성광업소. 우리나라 최대의 광산으로 지하갱도의 총연장은 서울에서 대구까지 거리인 약 270km에 이른다. 직접 탄을 캐는 광부가 600명이 넘고 이들의 평균나이는 47세나 된다.

“점점 더 깊은 곳으로 들어가 작업을 해야 되니 날이 갈수록 작업강도가 세집니다.” 모처럼 허리를 펴던 황 모(52)씨가 검은 땀을 훔치며 털어놓는다. “좋은 직업은 아니에요. 하지만 이곳에서 자리잡아 아이들을 키웠고 조금이라도 나아지겠지 기대하며 일해왔지요.”

옆에 있던 20년 경력의 김 모(42)씨가 한숨처럼 한마디 한다. “한창때는 이곳에서 생산되는 무연탄으로 국민들이 따뜻하게 방구들을 데우고 뜨거운 밥을 짓고 국을 끓였는데.... “

기자의 카메라만 보면 등을 돌려 피하던 광부들이 툭툭 한마디씩 건네는 말속에 미래에 대한 기대감 보다는 불안감이 막장의 탄가루처럼 묻어난다.

현재 우리나라 에너지 사용량 중 무연탄이 차지 하는 비중이 2% 정도. 그나마 우리나라가 가지고 있는 유일한 에너지인 무연탄을 포기하면 수입탄 가격도 폭등할 것으로 전문가들은 예상하고 있다.

남영순(52) 장성생산부장은 “그래도 이곳이 공사(公社)인걸요. 요사이 취직이 어려워서 그런지 자리가 나면 일하겠다는 지원자가 꽤 있습니다”라며 “사람은 끊이지 않는다”고 말한다.

하지만 1980년대 기운 넘치던 분위기는 이미 아니다. ‘정부는 가행탄광의 지속적인 보호 육성을 보장하라!’ 등 시내곳곳에 걸린 현수막에는 석탄산업을 정리할 것 이라는 시민들의 안타까움이 담겨있다.

연탄처럼 살고 있는 ‘젊은 광부’ 강홍일(52)씨는 말한다. “막장 인생은 없습니다. 막장에서도 뜨거운 희망을 캐내고 있는 전문 직업인 광부가 있을 뿐이죠”.

‘연탄은, 일단 제 몸에 불이 옮겨 붙었다 하면 하염없이 뜨거워지는 것’이라고 표현한 안도현 싯구처럼 그들도 다시 가슴 뜨거워질 날을 기다리고 있다.

사진,글=신상순기자 ssshi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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