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주자와 흑인 주자간 대결이 갈수록 치열해지고 있는 미 민주당 대선후보 지명전에서 인종문제가 본격적으로 이슈화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민주당 경선에서 선두 다툼을 벌이고 있는 힐러리 클린턴 상원의원과 버락 오바마 상원의원은 13일 흑인 민권운동가 마틴 루터 킹 목사가 민권법 제정 과정에서 행한 역할을 둘러싸고 날선 공방을 벌였다.
두 주자간 논쟁은 19일 네바다 코커스에 이어 유권자 중 절반 이상이 흑인인 사우스 캐롤라이나의 26일 예비선거를 앞두고 벌어진 것이어서 더욱 민감한 반향을 불러 일으키고 있다.
두 주자간 설전은 힐러리 의원이 뉴햄프셔 예비선거 전날인 7일 “민권운동에 헌신한 킹 목사의 꿈은 1964년 린든 존슨 대통령이 민권법을 제정했을 때 비로소 현실화하기 시작했다”며 킹 목사는 존슨 대통령을 적극 지지했다고 말한 것이 발단이 됐다.
오바마 의원측은 힐러리 의원의 발언에 대해 “결국 킹 목사는 변화를 실행할 수 없었으며 백인인 존슨 대통령이 실질적인 변화를 이룩했다는 점을 암시하는 것으로 흑인을 비하한 발언”이라고 문제를 제기했다.
오바마 의원도 직접 유감을 표시하면서 “힐러리 의원의 말에는 우리가 하는 일이 하찮은 것이라는 의미가 내포돼 있다. 그런 얘기를 들으면 미국민이 왜 워싱턴 정치와 정치인들의 행태에 식상해 하는지 알 수 있다”고 주장했다.
오바마 의원이 흑인 정서에 호소하며 공세로 나오자 힐러리 의원은 13일 “오바마 진영이 의도적으로 내가 한 말을 왜곡하고 있다”고 반박한 뒤 “나는 일생 동안 민권과 여성의 권리 신장을 위해 일해왔으며 변화가 어렵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킹 목사처럼) 그 대열에 참여한 분들에게 가장 높은 경의를 표하고 있다”며 무마에 나섰다. 힐러리 의원측은 오바마 의원측이 흑백 갈등을 부추기는 선거 전략을 쓰고 있다고 비난했다.
그러자 오바마 의원은 “힐러리 의원은 킹 목사의 역할을 평가절하한 것으로 느껴지는데 그런 말을 해 놓고 마치 우리가 뭔가 잘못한 것처럼 뒤집어 씌우는 것은 웃기는 일”이라며 재반격했다.
민주당 경선에서 3위를 달리고 있는 존 에드워즈 전 상원의원도 이날 고향인 사우스 캐롤라이나 유세에서 “킹 목사 관련 발언을 한 힐러리 의원은 워싱턴에 변화를 가져 오지 못할 것”이라며 힐러리 의원에 대한 공격에 가세했다.
이 와중에 힐러리 의원을 지지하는 흑인대상 TV 방송망 설립자이자 흑인인 로버트 존슨이 힐러리 의원 편을 들면서 오바마 의원의 마약 복용 전력을 들추는 등 흑흑 갈등의 양상이 나타나기도 했다.
한편 아이오와 코커스 승리 이후 뉴햄프셔 예비선거에서 아깝게 2위에 그친 오바마 의원은 14일 공개된 워싱턴포스트_abc 공동 여론조사 결과, 한달 전에 비해 지지율이 14%포인트나 껑충 뛴 37%를 기록, 11% 포인트 주저앉은 힐러리 의원(42%)을 바짝 추격했다.
워싱턴=고태성 특파원 tsg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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