헨리 데이빗 소로우의 ‘월든’을 처음 읽은 것은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에서 이런저런 글 쓰는 일로 밥벌이를 하며 좌충우돌 할 때였다.
월든 호숫가에 통나무집을 짓고 자급자족하며 독립적인 삶을 실현했던 인생이 매력적이기도 했지만 세상의 잣대나 가치, 시선 따위에 얽매이지 않고 무엇인가에 사로잡혀 온전히 자신을 다 던지고 ‘사실과 직면’하려는 그런 삶의 태도에 매료되었던 것이다.
그 당시 ‘월든’을 읽어보라고 한 사람은 EBS의 박수용 PD였는데, 시베리아 호랑이를 다큐멘터리로 기록했던 그는 몇 년 동안 러시아에서 촬영해 온 호랑이를 편집하고 있었다.
이효종, 장진, 순동기 PD팀이 오랜 시간에 걸쳐 모험과 인내로 촬영한 호랑이를 편집되지 않은 상태에서 보는 것은 애송이 작가로서 경이로운 경험이었다. 은밀한 햇살이 비치는 깊은 숲, 평화롭게 뒹굴 거리는 그 절대의 아름다움을 문장으로 표현하는 것은 헛되어 보였다.
야생 호랑이를 촬영하기 위해 추위와 공포의 고통 속에서도 오롯이 그들을 인내하게 만든 것은 절대적인 도취가 아니겠는가. 인생에서 그런 강렬한 모험과 위험을 경험한 후에 오는 육신의 피로와 피폐함조차 경계의 접점까지, 갈 데까지 가 본 이들만의 혹독한 댓가의 산물인 것 같았다.
극에 달한 그들의 눈빛은 맹수의 그것과 다름 없었다.
어리고 무모하고 심장 뜨거웠던 나는 솔직히 그런 ‘무한도전’의 삶이 부러웠다. 관찰자로서의 그들의 태도는 인내와 기다림의 연속이었다. 원래 그 자리에 서 있던 나무처럼 자연의 흐름을 방해하지 않고 그 호흡과 혼연일체 될 때 자연은 그 속살을 조금씩 드러내는 것이다.
외피에 집착하고 시류를 ?아 본질을 흐리는 얄팍함이 판치는 시대에 고향 뒷산 호숫가를 걷는 기분으로 나는 가끔씩 ‘월든’을 꺼내 읽는다. “절망 속에서 말없이 삶을 영위하고 있”는 세상의 힘겨움에서 잠시 벗어나 소로우가 삶을 즐겼던 방식처럼 독서와 고독을 즐기며 자연을 거스르지 않는 삶을 꿈꾼다.
가진 것이 많아 잃을까 두려워 전전긍긍하는 삶은 시시하다. 그러나 이 시시함과 비굴함을 ‘드레싱’ 삼아 인생의 순간순간을 아까워하지 않고 최선을 다해 살아낼 열정이 있다면 인생은 새로운 에너지로 더 풍요로워지지 않을까.
문혜진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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