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5년 초. 저녁 10시만 되면 길거리는 오가는 차도 사람도 드물 정도로 한산했다. 사람들은 월요일부터 목요일까지 방송되는 드라마 <모래시계> 를 보기 위해 서둘러 집으로 향했다. 모래시계>
<모래시계> 는 그야말로 ‘귀가 시계’였다. 국민 절반이 봤을 정도로 시청률이 높았던 이 프로그램 주인공 최민수의 “나 떨고 있니” “넌 내 여자니까” 하는 대사는 지금까지도 개그 코너에서 자주 회자된다. 모래시계>
하지만 2008년 TV프로그램의 평균시청률은 아무리 높아도 30%를 넘지 못한다. 방송 시간에 맞춰 TV 앞에 옹기종기 모여 앉지 않더라도 얼마든지 원하는 프로그램을 볼 수 있는 시대가 열렸기 때문이다. 시청률 조사기관 AGB닐슨의 자료에 따르면 2005년 이후 방송된 드라마는 단 한 작품도 시청률 순위에서 열 손가락 안에 들지 못했다.
지난해 관심을 집중시켰던 <태왕사신기> 의 평균시청률도 28.8%에 불과했다. <사랑이 뭐길래> (1992년)가 기록한 시청률(59.4%)의 절반밖에 안 된다. 도대체 시청률은 왜 이렇게까지 떨어지고 있을까. 사랑이> 태왕사신기>
윤호진 한국방송영상산업진흥원 책임연구원은 “TV 프로그램을 보는 사람의 수는 크게 줄지 않았는데 시청률이 급감한 것은 다매체의 영향”이라고 분석했다.
방송을 집 안 거실에 있는 TV가 아니어도 얼마든지 볼 수 있기 때문에 생긴 현상이라는 얘기다. 인터넷 다시보기, 스카이 PVR, 메가TV 등 새로운 매체는 시청자가 원하는 시간에 언제든지 방송을 볼 수 있게 했다. 게다가 PMP, DMB 등 개인 미디어 플레이어는 시간은 물론 공간적 제약까지 뛰어넘게 했다.
예를 들면 2005년 3월 방송을 시작한 문정혁 주연의 <신입사원> 은 2주 만에 인터넷 다시보기 15만 건을 기록했다. 한자릿수 시청률에 그쳤던 <얼렁뚱땅 흥신소> <인순이는 예쁘다> 등도 인터넷을 통해서는 젊은층의 큰 관심을 모았다. 인순이는> 얼렁뚱땅> 신입사원>
윤호진 연구원은 “인기 드라마 방송시간에는 상수도 사용량도 거의 없을 정도로 전 국민이 TV프로그램에 열광했던 모습은 볼거리, 놀거리가 없던 과거의 추억일 뿐”이라며 “새로운 매체의 등장, 경쟁 드라마 동일시간대 방영 현상 등으로 평균시청률은 앞으로 10% 정도 더 하락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1980년대 말 케이블TV 보급률 50%를 넘어선 미국은 지상파 시청률이 급격히 하락하는 경험을 우리보다 먼저 겪었다. <그레이 아나토미> <24> 등 미국 인기 드라마의 최고 시청률은 10% 안팎으로 우리나라보다 훨씬 낮다. 그레이>
허정헌 기자 xscop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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