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5년 5월 KBS 공채 5기 탤런트가 됐다. 아침마다 방문 틈으로 식구들 눈치 보며 학교를 가는 척, 도서관을 가는 척 하던 내가 어느 날 새벽부터 대문을 박차고 집을 뛰쳐나가기 시작했다.
‘어이구 드디어 저 놈이 정신을 차렸구나!’ 하며 식구들 입이 쩍- 벌어졌다. 그러나 내가 달려가는 곳은 생면부지의 세계 – ‘딴따라’ 판이었다. 나는 그 곳이 어떤 곳인지, 무얼 하는 곳인지 아무 것도 몰랐다. 그러나 단지 하나 그곳만은 나를 기다리고 반겼다. 서대문 금화산 자락의 집에서 뛰기 시작한 나의 발은 시청을 넘어 남산까지 거짓말 안 보태고 30분 만에 휙 날아 떨어졌다.
새하얀 빛을 발하며 높게 달린 수많은 조명등, 거대한 몸짓을 하며 움직이는 카메라들, 방송국 스튜디오는 밤낮이 없는 듯 긴장 속에 쉬지 않고 움직이고 있었다. 매일 아침 9시, ‘이 세상에서 내가 제일 잘 났다’라고 뽑힌 남녀 45명 속에 나도 있었다. 그곳에서 나는 매일 예쁜 여자를 무려 20명이나 볼 수 있었고 난생 처음 매달 2만원도 생겼다.
나는 ‘사랑다방’ 레지 앞에서 큰소리로 “커피 5잔!” 하며 친구들 커피 값을 우쭐대며 내기도 하고 당구 값도, 술값도 냈다. 동기생들은 국립극장 배우 아니면 내로라 하는 유명극단의 배우, 대학 연극과 재학생들이었다. 나만 연극의 ‘연’, 연기의 ‘연’자도 몰랐다.
여자 동기생 중에는 한국영화사에 이름이 남는 스타 문희와 남정임도 있었다. 문희는 까무잡잡한 피부에 까만 눈동자가 몹시 반짝였다. 나는 그녀의 눈빛이 매우 좋았다. 그러나 ‘못된’ 이만희 감독이 수업을 참관하다가 문희를 영화 <흑맥> 주인공으로 스카우트하는 바람에 그녀의 검은 눈동자를 중도에 놓치고 말았다. 남정임은 피부가 뽀얗고 고왔다. 흑맥>
눈도 매우 맑았다. ‘얄미운’ 연방영화사 주동진 사장이 느닷없이 방송국장을 앞세워 교육장으로 들어오더니 남정임을 끌고 가 영화 <유정> 의 주인공으로 뽑아 김이 샜다.(주동진 사장은 5년 후 비로소 나의 진가를 발견하고 엄청난 조건으로 무려 10편의 영화출연계약으로 나를 묶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동기생들은 하나 둘씩 교육 중에 영화감독과 PD들에게 픽업되기 시작했다. 그러나 나는 PD 심부름과 교육장 청소 담당이 되었다. 유정>
나는 잘리지 않은 것만 해도 다행이라며 적응을 잘 해 나갔다. 매달 받는 돈으로 식구들한테 손 내밀지 않는 것, 매일 새벽같이 방송국으로 날아다니는 것만으로도 행복했다. 그러다 어느새 3개월의 교육기간이 끝났다. 동기생들은 영화와 TV 출연으로 바빴다. 그러나 어느 누구도 나를 찾지 않았다.
다음날 아침, 나는 신기하게도 괘종시계가 7시를 치기가 무섭게 이미 대문을 박차고 나가고 있었다. 나르듯이 방송국으로 뛰고 있었다. 텅 빈 교육장. 나는 예나 다름없이 비를 들고 바닥을 쓸었다. 그리고 PD실로 가 꾸벅 아침인사를 하고 분장실 문을 열었다. 그곳에서 선배 탤런트들과 동기생들이 출연 준비를 하고 있었다.
나는 그들 사이를 누비며 잔일을 도왔다. 여기에서마저 낙오자가 될 수는 없었다. 분장 보조, 조명 보조, 촬영 보조, 등사실 대본제작 보조. 방송국의 총체적 밑바닥 생활이 계속되었다. 나는 하루도 쉬지 않고 뛰었다. 달리고, 굶었다. 허리 22인치, 기성복을 구해 입기도 어려웠다. 간혹 마음씨 좋은 AD가 방송을 마치고 명동 막걸리 집에 데려가는 날은 막걸리로 배를 채우다가 안타깝게도 토하기 일쑤였다.
여름 방학 기간이라 종일 방송국에서 살 때였다. 일요일 새벽부터 작가 집에서 대기하고 있다가 겨우 저녁이 되어 원고를 받아 밤늦게까지 등사실에서 대본을 쓰고 있었다. A스튜디오에서 급히 찾는다고 하여 달려 내려갔다.
방송을 시작하려고 하는데 갑자기 PD가 타이틀 백에 쓸 행인이 필요하다고 하여 나를 부른 것이다. 나는 날아갈 것 같았다. ‘드디어 텔레비전에 나올 기회가 왔구나!’ AD가 바바리를 던져주며 “야, 처음 하는 거니까, 테스트! 걸어와 봐!” 했다.
나는 바바리 깃을 올리고 폼을 잡으며 카메라 앞으로 걸어왔다. 그때 갑자기 주조종실에서 PD의 신경질적인 목소리가 스피커로 쏟아졌다. “야, 그 엑스트라! 카메라 뒤에서 들어가 골목으로 사라지라고 해! 카메라 쪽 보지 말고!” 나는 어깨가 축 처진 뒷모습으로 걸어갔다. ‘재수 더럽게 없네...데뷔가 엑스트라 뒤통수...!’ 바로 이 슛이 나의 딴따라 데뷔 컷이다.
그 PD가 그 유명한 영화 <미워도 다시 한번> 의 정소영 감독이다. 세월이 한참 지나 내가 주연배우로 잘 나갈 때였다. 정 감독이 나에게 몇 번의 출연 제의를 하였다. 나는 계속 거절하였다. 안되겠는지 직접 전화를 했다. 나는 어쩔 수 없이 만났다. 미워도>
그는 옛정을 생각해서 같이 일을 하자고 했다. 나는 정 감독에?그 이야기를 하였다. 그는 크게 웃었다. “나는 그 때의 일을 너무 잘 기억하네. 골목길에서 한 사나이가 걸어오는데 이건 엑스트라가 아니야. 정말 미안하네. 뒤통수 데뷔가 되었다니... 허허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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