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릴린치와 모건스탠리, 씨티그룹, UBS 등 미 월가(街)의 세계적인 투자은행(IB)에 투자하는 국내 사모펀드가 처음 만들어진다.
미국의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사태로 심각한 유동성 위기를 겪으며 주가가 급락한 이들 금융기관에 투자할 경우 향후 2~3년 내 상당한 수익 창출이 가능하다는 판단에서다.
13일 금융업계에 따르면 연기금, 군인공제회, 신한은행과 도이체방크, 외환은행, 솔로몬저축은행, 국내 중견 건설회사 등이 기관투자자로 참여하는 사모펀드가 7월 말까지 10억달러 규모로 조성된다.
국내 펀드시장의 대표주자인 미래에셋자산운용과 한국투자증권 등이 주관 운용사로 참여하며, 세계 최고의 회계ㆍ컨설팅 업체인 KPMG의 국내 제휴사 삼정KPMG가 이미 현지 자문법인으로 확정됐다.
이 펀드는 내년 초까지 서브프라임 사태 진행과정을 지켜보며 투자 적(適)기에 맞춰 본격적인 투자에 나선다는 계획이다.
이미 싱가포르와 중국 등 아시아와 중동계 국부(國富)펀드는 자금난에 처한 이들 금융기관의 지분을 공격적으로 사들이고 있다.
중국투자공사(CIC)는 지난해 말 모건스탠리 지분 9.9%를 50억달러에 사들였고, 싱가포르의 테마섹은 메릴린치에 50억달러를 투자했다. 또 아랍에미리트(UAE)의 아부다비투자청은 씨티그룹 지분 4.9%를 75억달러에 인수했다.
반면 우리나라의 국부 펀드 격인 한국투자공사(KIC)는 환금성 좋은 주식과 채권에만 투자할 수 있고, 특정 기업 지분을 대규모로 사들일 수 없도록 한 투자규정 탓에 이런 기회를 놓치고 있다.
KIC 관계자는 “현재 자금난을 겪고 있는 미국 유수의 IB에 투자 중인 홍콩의 한 펀드운용사로부터 투자 요청을 받았으나, 투자제한 조건에 발목이 잡혀 검토 과정에서 포기했다”며 “세계적인 IB의 지분을 매입하는 것은 100년에 한 번 올 수 있는 좋은 투자 기회”라고 아쉬워했다.
10년 전 외환위기 당시 월가 금융기관들의 국내투자 사례를 상기해볼 필요가 있다는 지적도 있다. 가칭‘미 서브프라임 부실자산(NPA) 전략투자 사모펀드’의 현지 투자운용 자문역할을 맡을 삼정KPMG의 윤영각 회장은 “메릴린치 등 월가 금융기관들의 현재 주가는 평소보다 약 30~50%나 떨어져 내재가치보다 낮은 수준”이라며 “이들 회사의 지분을 지금 헐값에 인수할 경우 2~3년 후 주가 회복에 따른 재무적 수익 창출이 예상된다”고 말했다.
그는 또 “10년 전 외환위기 당시 론스타와 칼라일 등 미국계 사모펀드가 내재가치 높은 국내 자산에 투자해 엄청난 매각차익을 얻은 것과 같은 기회가 우리에게도 찾아온 것”이라며 “올해 상반기 미 금융회사들이 지난해 말보다 더 큰 규모의 손실을 상각하면서 추가 펀딩 수요가 예상되는데다, 중국에 대한 미국의 경계심이 높아져 새 투자자를 물색하는 과정에서 한국에 유리한 분위기가 만들어질 수 있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일각에선 투자 리스크가 만만치 않을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홍성국 대우증권 리서치센터장은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의 파장은 아직 미궁 상태로, 미국 뿐 아니라 유럽과 이머징 시장으로 확산되고 있다”며 “문제의 본질은 미국 부채경제 구조의 회복 여부에 달려있는 만큼, 리스크를 완벽하게 벗어나기 전에는 투자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최근 미 금융기관에 대한 투자제의 요청을 검토하다 철회한 SK증권의 고위관계자는 “신용경색에 이어 경기 침체로 빠져들고 있는 미국의 금융회사에 투자해 수익을 기다리기에는 최소한 2년 여가 필요해 오히려 이머징 마켓 투자가 더 바람직한 것으로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장학만기자 local@hk.co.kr 김용식기자 jawohl@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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