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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화숙 칼럼] 평화의 댐을 기억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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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화숙 칼럼] 평화의 댐을 기억하라

입력
2008.01.15 0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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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 나라가 들썩이며 북한의 물공격을 걱정하던 때가 있었다. 1980년대 중반에 전두환 정권은 갑자기 북한이 금강산 댐을 짓는 것은 남한을 물공격하기 위한 것이라며 이에 대비하기 위한 대형 건설댐을 지어야 한다고 발표했다.

그리고는 모든 언론이 춤을 추듯이 금강산 댐의 가공할 파괴력을 도표로 그리면서 대응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떠들어댔다. 금강산댐의 저장능력이 70억~200억 톤이라 한꺼번에 수문을 열면 서울이 얼마만큼 물에 잠기는지가 상세하게, 아주 과학적인 양 소개됐다.

■ 전문가까지 동원, 억지 댐 강요

정부 관리, 건설업계 관계자는 물론 학계에서도 다양한 전문가들이 나와 목소리를 맞추었다. 그 결과 1987년 강원도 화천 지역에 '평화의 댐'이라는 이름의 거대한 댐을 짓는 공사가 시작됐다.

금강산댐의 물공격을 피하기 위해 대형 댐을 지어야 한다는 논의가 분분할 때 나는 평기자로서 학계의 진짜 의견을 듣기 위해 토목 전문가를 몇 명 만났다.

그 때 만난 한 교수는 전화로는 말할 수 없으니 직접 오라고 하고서는 나를 만나 "이것은 완전히 허위"라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결국 이 댐은 건설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왜냐하면 중동붐이 사그라들면서 죽어가는 건설경기를 살려 달라고 건설업체들이 매달렸고, 거기에 전두환씨가 부응하면서 이 구상이 구체화했다고 이 교수는 보았다. 실제로 당시 금강산댐을 만들어야 한다고 가장 강력하게 주장한 사람 중 한 명이 정주영 당시 현대그룹 회장이었다.

빈 땅에 댐을 지은들 나쁠 것이 무언가, 그 덕에 돈이 풀리고 그 돈으로 건설업자와 노동자와 부자재 업체가 다 산다면 경기가 살고 다 좋은 것 아닌가 하는 분위기가 팽배하던 시절이었다. 아니, 정부에서 그렇다면 구체적인 검토도 없이 그대로 이뤄지던 시절이었다.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 역시 현대그룹에서 일할 때이다.

당시 온 나라가 들썩이면서 국민성금까지 거뒀다. 북한의 물공격에 서울까지 잠길 수 있다니까 초등학생까지 저금통장을 털었다. 평화의 댐에 들어간 국민성금만 600억여원이 된다고 한다. 그러나 그 후 북한의 물공격은 전혀 없었다.

문민정부가 들어선 1993년에 감사원은 평화의 댐을 감사한 결과 북한 금강산 댐의 수공위협과 피해예측은 과장됐다고 결론을 내렸다. 금강산댐의 저수량은 70억~200억톤이 아니라 27.2억~59.4억톤이었고 최대치가 방류되어도 서울 마포 용산의 저지대 일부만이 침수된다는 내용이었다.

그러나 거기에 대해서 책임을 지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수중에 29만원 밖에 없다는 전두환씨가 책임을 질 리도 없었고, 당시 댐 건설의 중요성을 설파하던 정주영씨는 이미 2001년에 고인이 되었다.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의 책임 여부는 알 길이 없다. 덕분에 평화의 댐은 간간이 관광객이 찾는 을씨년스런 풍물로 지금도 화천에 존재하고 있다.

■ 전문적 평가 없는 운하는 안돼

2008년에는 새 정부가 들어서서 전 국토를 운하로 만들겠다는 구상이 있다. 때마침 건설경기는 죽어가서 건설업체마다 힘들다고 아우성이다. 그렇다고 주택건설로 건설경기를 되살리다간 집값이 뛰어서 국민들이 들고 일어날 참이다.

때맞춰 운하건설 같은 큰 '국토 재건사업'이 있다면 업체도 살고 나라에도 돈이 돌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건설 일변도의 생각을 해온 사람이라면 떠올릴 수도 있다. 이것이 까마귀 날자 배 떨어지는 형국인지 건설경기를 되살리고 싶어 하는 고도의 전략인지는 새 정부가 어떻게 하느냐에 달려 있다.

정말 운하가 이 나라에 필요한지 새 정부는 전문가의 말에 진지하게 귀 기울이고 결정을 내려야 한다. 어영부영 하고 싶은 대로 하기에는 저 평화의 댐이라는 건설과오의 탄생과정을 기억하는 국민이 너무도 많다.

서화숙 편집위원 hssu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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