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정부 출범을 앞두고 경부운하 논쟁이 달아오르고 있다. 아직은 총리 인선을 비롯한 사람과 자리에 관심이 쏠린 상태지만, 새 정부가 들어서고 나면 무엇보다 뜨거운 이슈가 될 조짐이다.
당선인이 굳센 의지를 천명한데다, 이내 총선이 다가오는 상황에서 이보다 더 좋은 싸움거리가 없을 것이다. 그래서 이쯤에서 논쟁의 가닥을 올바로 잡아놓는 게 모두를 위해 좋을 듯하다.
경부운하의 인화성이 큰 것은 '단군 이래 최대 역사'인 때문만은 아니다. 우리 사회가 오로지 그 때문에 치열하게 논쟁한다면 감동하며 반길 일이다.
그보다 정치사회적 힘겨루기, 더러는 이념다툼에 두루 적합한 요소를 지닌 탓이 크다. 지리멸렬한 대통합민주신당의 명줄을 책임진 손학규 대표가 대뜸 '경부운하 저지'를 외친 것이 이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 정치와 이념 굴레 벗어나야
정치권뿐 아니라 시민사회세력과 전문가들도 순전히 합리적 판단을 좇는다고 볼 수 없다. 거칠게 비유하면, 과거 햇볕정책을 둘러싼 논란이 국가전략이나 민족문제에 대한 진지한 고민보다는 이념과 지역 또는 DJ 선호 여부를 경계로 줄곧 접점 없이 진행된 것과 비슷하다. 그만큼 경부운하 논쟁도 정직한 토론과 진정한 타협을 기대하기 어렵다.
그러나 분명히 헤아릴 것이 있다. 햇볕정책은 '불구대천의 원수' 또는 '구제불능의 망나니'로 여긴 북한에 화해와 시혜의 손을 내미는 파격이었다. 오랜 분단과 적대로 쌓은 이념과 정서의 장벽이 높을 수 밖에 없다.
이에 비해 경부운하는 타당성 여부를 떠나 당장은 우리 자신의 이익을 위해 추진하겠다는 점이 근본적으로 다르다. 북한을 포함한 한반도 대운하 구상은 일단 논외다.
그런 만큼 이념이나 정치에서 멀리 벗어나, 경제적 기술적 환경적 타당성을 정확하게 가늠하는 것이 절실한 과제다. 공약 단계에서는 정치적 의도와 허구성부터 따지는 게 당연하다.
그러나 실로 역사적 규모인 국책 프로젝트의 타당성을 논하면서 총선 전략이나 건설부양책 등을 먼저 의심하는 것은 저지 방책으로 삼기에도 졸렬하다. 돛도 올리지 않은 정부의 업적 지향을 지레 비판하거나, 정권의 정통성 제고 따위를 거론하는 것은 더욱 서투르다.
강력한 정책 의지와 수단을 지닌 정부를 상대하려면, 그보다 훨씬 성실하고 정교한 검증에 힘을 쏟아야 한다. 여론의 다수가 아직 반대 쪽에 서 있다고 해서, 전문적 지식과 논리를 갖추지 않은 채 허투루 논쟁에 나설 일이 아니다.
정확한 사실과 과학적 추론을 제시하기보다, 국민 대다수가 판별 능력이 없는 점을 이용해 터무니없는 반대 주장을 펴는 것은 한층 어리석다. 대선과 총선 의 기억이 흐려지고, 정부의 정책 드라이브가 가속화할수록 허술한 저지선은 쉽게 무너질 수 있다.
이렇게 볼 때, 최근 방송 토론과 신문 기고를 통한 경부운하 논쟁은 어떤 시각에서 보아도 실망스럽다. 이를테면 KBS <심야토론> 은 찬성 쪽 패널이 이명박 당선인의 '의지와 능력'을 유난히 강조하는 바람에 오히려 믿음을 주지 못했다. 심야토론>
반면 반대 쪽은 운하 계획을 온통 황당무계하고 쓸모 없이 위험하기만 한 것으로 치부, "그러면 도대체 왜 이런 일을 추진할까"하는 의문을 안겼다. 양쪽 모두 합리적 논증에 실패한 셈이다. 사회자도 의문을 해소하려는 노력 없이 난감하다는 말만 거듭하는 태도가 두드러졌다.
■ 객관적 자료와 논리 근거해야
MBC <100분 토론>은 훨씬 나았다. 찬성 쪽에서 물류 전문가라는 박승환 의원이 여러 쟁점에 가장 구체적인 자료와 논리로 접근했다.
그러나 역시 반대 쪽의 전혀 상반된 주장에 맞서 시청자를 효과적으로 설득하는 데는 이르지 못한 듯하다. 방송 토론과 신문 기고를 통해 반대 주장에 앞장선 경제학 교수도 전공을 넘어선 강파른 주장이 거슬렸다.
단적으로, 내륙수운은 시간이 많이 걸려 쓸모없다고 강변하는 것은 최대 장점의 하나인 정시성(定時性)을 부정하는 독단 또는 거짓이다. 독일 등의 내륙수로에 관한 전문자료를 비웃는 이런 토론 자세부터 고쳐야, 강행이든 저지든 올바른 논쟁을 할 수 있을 것이다.
강병태 수석논설위원 btk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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