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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우' 모으는 백령도 몽운사 지명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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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우' 모으는 백령도 몽운사 지명스님

입력
2008.01.15 0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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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해 최북단 백령도는 200년 동안 절이 없었던 섬이다. 조선 후기 먹고 살 것이 없어 사람들이 떠나자 스님들도 함께 떠났고 절은 무너졌다.

지명(智明ㆍ44) 스님은 5년 전 섬에 들어가 조그만 절을 짓고 수행하며 살고 있다. 백령도가 효녀 심청 설화의 무대라서 ‘효행의 집 몽운사’라는 이름을 붙인 절은 슬라브 지붕의 조촐한 누옥이지만 평양을 향해 인자한 미소를 머금은 높이 9m의 해수관음상이 서 있다.

인천의 한 절에 살면서 백령도의 군부대들로 위문을 다닌 인연으로 그 외딴 섬에 절을 열게 된 지명 스님이 발우(鉢盂ㆍ스님들이 쓰는 밥그릇)를 100여 벌이나 소장하고 있다는 얘기를 듣고 찾아갔다.

‘일발삼의(一鉢三衣ㆍ발우 하나와 옷 세벌)’라는 말처럼 발우는 탁발에 의지해 무소유의 삶을 사는 출가 수행자들의 표상이었다. 특히 선종에서 발우는 밥그릇 이상의 의미가 있다. 그것은 수행의 매개이며, 초조 달마대사로부터 육조 혜능대사에 이르기까지 선사들이 제자들에게 깨달음을 전한 전법(傳法)의 상징이었다.

“몇 해 전 어느 노스님이 발우를 얼마나 모았느냐고 물으시더군요. 80여 벌 된다고 했더니 ‘나는 한 벌 가지고도 평생 먹고 사는 데 너는 얼마나 얻어먹으려고 그러느냐’고 말씀하셨어요.”

8일 인천 도화동의 조그만 포교당에서 만난 스님은 꾸밈 없이 말을 건넸다. 해인사 강원을 다니던 시절 그가 사용하던 목(木ㆍ나무)발우에 금이 간 일이 있었다. 선배 스님이 옹기로 된 발우를 건네 줘 공양(供養ㆍ식사 하는 일)할 때마다 부딪쳐 소리가 날까 깨질까 조심조심 사용하면서 자연스럽게 발우에 관심을 갖게 됐다.

“지금은 절이 세상에 물들어 많이 퇴색됐지만 ‘일발삼의’는 수행자의 모습과 사찰 경제의 상징이었습니다. 그 취지로 좀더 다가서서 그렇게 살고 싶었고, 발우를 좀더 조명해보고 싶었습니다.” 지명 스님은 강원을 졸업하고 불국사 선원 등 여러 선원에서 ‘직지인심 견성성불(直指人心 見性成佛)’을 본뜻으로 하는 선(禪) 수행을 하면서도 발우에 대한 관심을 놓지 않았고 주변에 부탁해 발우와 관련 자료를 모았다.

구하(1872~1965)스님, 석주(1909~2004)스님 등 국내의 여러 노스님들이 썼던 발우 뿐만 아니라 티베트의 정신적 지도자 달라이라마, 대만 불광산사의 성운 스님, 미얀마의 우꾸마라 스님, 태국의 프라자라타나 몰리 스님 등 외국의 유명한 고승들의 발우도 그의 손에 들어왔다. 지금 우리 스님들이 쓰는 발우는 대부분 목발우로 어시발우(밥을 담는 큰 발우), 1분자(국 발우), 2분자(반찬 발우), 3분자(청수 발우) 등 4개 1조로 돼 있지만, 붓다 재세 시에는 큰 발우 하나를 사용했으며 지금도 인도나 남방불교에서는 탁발할 때 하나의 큰 발우를 쓰며 대부분 철(鐵ㆍ쇠)발우이다.

지명 스님은 얼마 전 그렇게 모은 발우와 자료를 모아 “읽으면서 ‘마음이 편안한 세계’를 잠깐만이라도 느껴보시라”며 <깨달음의 벗 천하일발> (이른아침)이란 책을 펴냈다. 발우와 관련된 공양, 탁발, 시주 등에 관한 이야기와 세계의 여러 발우들의 사진을 담았다. 3월 중순부터 한달 동안 서울역사박물관에서 발우 전시회도 열 계획이다.

“제가 출가하던 80년대 중반만 해도 주지 안 한다는 스님들이 많았습니다. 지금은 물 좋은 수도권 절로 모이는 게 세태입니다. 걸망 메고 만행하는 모습도 많이 사라졌습니다. 없이 사는 게 자랑은 아니지만 수행자는 당당할 수 있습니다. 제 주변의 도반들을 봐도 주지 하는 사람은 별로 없습니다.” 지명 스님은 발우로 표상되는 수행자 본연의 모습으로 살아가고 싶다고 했다.

글ㆍ사진 남경욱기자 kwna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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