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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사과 장편소설 '미나'/ "너 때문에 내 삶이 누추해졌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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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사과 장편소설 '미나'/ "너 때문에 내 삶이 누추해졌어"

입력
2008.01.15 0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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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 21세(84년생)이던 2005년 창비신인소설상을 받으며 데뷔한 김사과(24ㆍ사진)씨의 첫 책은 장편이다. 김씨가 작년 문예진흥기금을 받아 프라하, 뉴욕을 여행하면서 쓰고 서울에 돌아와 마무리한 <미나> (창비 발행)가 출간됐다. 작가의 몇몇 단편처럼 10대 학생들을 주인공으로 한 이 소설은 거침없고 열띤, 그리고 무시무시한 결말로 치닫는 이야기다.

단짝 친구인 고등학생 수정과 미나는 또다른 친구 지예의 자살을 계기로 미묘한 관계 변화를 겪는다. 미나는 친구의 죽음에 대한 충격을 추스르지 못한다. 백지 답안지를 내고 불면으로 먹은 수면제 때문에 학교를 결석하고, 급기야 학교를 그만두고 대안학교로 옮겨간다. 교양 있는 부모, 복권당첨으로 얻은 부유함, 멋있는 오빠를 가진 미나에게 열등감 어린 동경을 느끼던 수정은 미나의 변모에 혼란을 느낀다.

여기엔 지예에 대한 질투 때문이라고만 치부할 수 없는, 수정의 근본적인 인식 혼란이 자리하고 있다. “너는 박지예가 죽었다고 자퇴했잖아. 수업도 안 받고 시험지도 백지로 냈어. 어떻게 그럴 수가 있을까?”(284쪽) 삶이란 더 무거운 것을 이고 갈 혜택을 얻기 위해 오늘의 비루함을 감당해야 하는 ‘고통스러운 교환’이라고 철석같이 믿는 우등생 수정은 특이하면서도 고급한 취향으로 늘 자신을 누추하게 했던 미나가 느닷없이 낸 문제를 풀고자 애쓴다.

“니가 생각하는 것처럼 이 세상이 그렇게 씨발스러운 데가 아니라고! 친구가 죽으면 슬퍼하는 게 세상이야”(287)라는 ‘출제자’의 해설은 정답 같지 않다. 문제가 안풀린다면 시험지를 찢어버리는 수밖에. 40쪽에 걸쳐 격렬하게 묘사된 스릴러풍 결말은 김씨의 한 에세이 속 “나는 보통 대개 순전히 나의 내부 폭력성을 충족시킬 목적으로 나의 픽션에 나오는 등장인물을 죽인다”는 구절을 절로 떠올리게 할 만큼 압권이다.

두 친구가 맞는 파국은 ‘외부’를 허용치 않는 강고한 자본제 사회, 그 중에서도 자본주의적 인간을 길러내는 교육 체제에 대한 강력한 경고로 읽힌다. 간간히 이야기의 흐름에서 벗어나 수정이 독백처럼 쏟아내는 사회적 발언들은 반인본주의적 체제를 향한 작가의 직설과 가까워 보인다. 평론가 강유정씨는 이어폰, 핸드폰 등 단자화된 개인과 접속 사회의 아이콘이 자주 등장하는 이 소설을 두고 “온(On) 세대들의 분리장애를 표상한다”고 해석했다.

이훈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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