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름으로 망가진 바다와 자식같이 가꿔놓은 양식장을 바라보면서 가슴을 쥐어뜯고 통곡하며 오열하던 선생의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바다를 빠른 시일 내에 회복시켜 생명력 넘치는 바다로 가꾸는 것이 선생의 한을 풀어드리는 일입니다.”
14일 오전 충남 태안군청 광장에서는 기름유출 사고 피해를 비관해 음독 사망한 어민 이영권(65)씨의 영결식이 열렸다. 기름방제복 차림으로 영결식장을 찾은 지역 주민 1만5,000여명의 얼굴에는 이씨의 죽음이 남의 일이 아닌 것처럼 안타까워하는 표정이 역력했다.
영결식장 주위에는 기름피해로 찌든 바닷가와 기름에 절어 죽어가고 있는 새들, 아직도 계속되고 있는 방제작업 사진 등을 전시돼, 태안의 재앙이 여전히 현재 진행형임을 알렸다.
슬픔으로 흐느끼던 영결식장이 흥분과 분노의 장으로 돌변한 것은 숨진 이씨의 딸이 ‘아빠에게 보내는 편지’를 굵은 눈물로 읽어 내려가면서부터. 기름유출의 가해자로 지목되고 있지만 한마디 사과조차 없는 삼성중공업에 대한 비난과 사고에 신속하게 대응하지 못한 정부에 대한 성토가 이어졌다.
추모객들은 이씨의 영정을 에워싼 ‘기름 피해 진짜 주범 삼성그룹 무한 책임’ 등의 문구가 적힌 수백개의 만장(輓章)을 바라보며 극언도 서슴지 않았다. “기름유출 대재앙을 일으키고도 입을 다물고 있는 것이 초일류 기업을 표방하는 삼성의 진짜 모습이냐”는 원색적인 비난도 잇따랐다.
하루아침에 생활의 터전을 잃어버린 어민들은 빚을 내 하루하루를 어렵게 살아가고 있다. 언제쯤 바다와 갯벌에 나가 예전처럼 살 수 있을지 기약도 없다. 대재앙 발생 40일이 다 되도록 한마디 사과 없이 침묵하고 있는 삼성중공업과 부실한 초기 대응으로 화를 키운 정부가 성난 어민들에게 답할 차례다.
태안=이준호 기자 junhol@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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