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초 벤 버냉키 미국 FRB 의장이 앨런 그린스펀의 18년 권좌를 이어받았을 때 월스트리트저널은 "벤이 독배(Poisoned Chalice)를 건네받았다 "고 비꼬았다.
전후 최장기 호황을 이끈 '경제대통령' 혹은 '마에스트로'에게 온갖 찬사가 쏟아지지만, 정작 미국경제는 그린스펀의 부정적 유산 때문에 골병을 앓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의 명성은 퇴임 후에도 거의 줄지 않았으나, 학계와 월가에선 일찍부터 "임기응변식 정책으로 주식과 채권거품을 조장한 '더블 버블맨'이 부동산 거품으로 곧 '트리플 버블맨'이 될 것"이라는 비판이 적지 않았다.
▦ 2005년 4월 발간된 는 반 그린스펀 진영의 주장을 대변한 책이다. 서든메소디스트대 래비 라트라 교수가 쓴 이 책의 주장은 부제 '그의 20년 정책이 세계 경제를 어떻게 잠식했나'에 잘 나타나 있다.
수요 부족에 따른 경제위기가 발생할 때마다 그린스펀은 미봉적 저금리정책을 고집해 나라와 국민을 빚더미에 올라앉게 하고 세계경제의 불균형을 키웠다는 것이다. 그가 자랑하는 뛰어난 현실 적응력도 따지고 보면 작은 위기를 더 큰 위기로 덮는 것에 불과했고 결국 거품만 키웠다는 얘기다.
▦ 그린스펀도 문제의 심각성을 감지한 듯 같은 해 8월 FRB 연례 심포지엄에서 '경기과신에서 비롯된 주식ㆍ부동산 등 자산시장의 거품'을 경고했다. 그러나 부시 정부의 감세정책을 지지한 그를 줄곧 비난해온 폴 크루그먼 프린스턴대 교수는 이때 이미 거품 붕괴 시나리오를 제시하며 "충격이 3년 이상 지속될 것"이라고 단언했다.
세계은행 부총재를 지낸 조지프 스티글리츠 콜롬비아대 교수도 "그린스펀의 무리한 통화정책이 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실을 낳았다"고 꼬집고 "지속 가능성이 없는 것은 지속할 수 없다"는 명언을 남겼다.
▦ 월가에는 "붕괴를 기다리는 다음 거품은 그린스펀의 명성"이라는 말이 무성하다. 미국경제가 경기둔화(slowdown)를 넘어 본격적인 경기침체(recession)에 접어들면 그에 대한 평가가 180도 달라질 것이라는 것이다.
본인은 "신흥시장을 비롯한 전 세계적 과잉저축이 촉발한 주택시장 거품을 통화정책 탓으로만 돌리는 것은 옳지 않다"고 반박하지만 우군은 별로 없다. 얼마 전 대통령직 인수위와 한국은행이 중앙은행 독립의 성격과 한계를 놓고 날선 설전을 벌였다. 그린스펀 사례를 잘 연구하면 해답의 단서를 찾을 수도 있을 것 같다.
이유식 논설위원 ys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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