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처구니없는 보안사고가 발생했다. 극도의 보안이 요구되는 국가정보원의 대외비 문건이 대통령직인수위에 보고되자마자 통째로 일부 언론에 유출돼 보도된 것이다. 그것도 남측 김만복 국정원장이 방북해 북측 김양건 통일전선부장과 나눈 대화 내용을 담은 문건이다. 인수위 핵심관계자는 “정말 미치겠다”고 했지만, 보는 이들의 답답함에 비할 바가 아니다.
정보를 다루는 최고 당국자들 사이의 접촉에선 보안과 비밀 유지가 생명이다. 남북관계는 특수성이 있고 북핵 문제 때문에 더더욱 조심해야 한다. 보도된 대화 내용에는 민감한 사안은 없었지만, 그것과 별개로 이런 문건이 흘러 나왔다는 자체가 인수위를 포함한 정부 당국의 수준을 의심케 한다.
아직 어디에서 유출됐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인수위가 색출작업에 들어갔으니 어쨌든 결과가 나올 것이다. 하지만 분명한 건 인수위 아니면 정부, 특히 국정원이나 통일부 등 유관 기관에서 새 나갔을 것이라는 점이다.
보고를 받은 인수위는 일단 포괄적 책임을 면하기 어렵다. “일벌백계 차원에서 엄중 조치하겠다”며 국정원측에 보안 감사까지 요청했지만, 바로 얼마 전 정부조직 개편안 중 하나가 유출돼 한바탕 홍역을 치른 인수위이고 보면 아직 정신을 못 차렸다는 말을 들어도 할 말이 없다.
국정원에 대해선 대한민국 최고 정보기관의 보안능력이 겨우 이 정도였는지 한숨이 절로 나올 뿐이다. 혹시라도 새 정부의 대북정책 기조가 현 정부와 확연히 달라져서는 안 된다는 정치적 판단이 개입된 사고였다면 문제의 심각성은 훨씬 크다.
이번 사고는 분명 “국가 주요기밀이 유출된 사건”(이동관 인수위 대변인)이다. 철저한 진상규명과 문책이 뒤따라야 함은 물론이다.
정치부 양정대기자 torc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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