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적으로 '금녀(禁女)' 성향이 강한 국내 해운업계가 최근 '여성 천하'로 변모하고 있다.
해운업계에 새바람을 몰고 오고 있는 '여풍(女風)'의 주인공은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과 최은영 한진해운 신임 회장. 고 조수호 한진해운 회장의 미망인인 최 전 부회장은 지난해 한진해운 연말 인사에서 신임 회장 자리에 올랐다. 이에 따라 현 회장을 포함해 국내 해운업계의 양대 산맥인 현대상선과 한진해운을 이끄는 선장이 모두 여성이 된 것이다.
해운업계는 여성을 배에 태우지 않을 정도로 배타적인 업종으로, 그간 선사의 오너들은 남성 일색이었다. 하지만 최근 여성 오너가 잇따라 부상하면서 이런 관행이 무너지고 있다. 여성 CEO들은 강력한 리더십에 여성 특유의 섬세함을 더 한 '부드러운 카리스마'로 해운업계를 이끌고 있다.
2004년 현대상선 이사회 의장에 오른 현정은 회장은 노정익 사장에게 실무 전반을 위임했지만 2006년 4월 현대중공업그룹과 경영권 분쟁이 발생한 뒤에는 현대상선 경영을 각별히 챙기고 있다.
현 회장은 이 달 중 열리는 8,600TEU급 컨테이너선 명명식에 참석해 현대상선의 재도약을 선언할 예정이다. 그 동안 6,000TEU급을 주력으로 했던 현대상선은 8,600TEU급 4척 도입을 계기로 선대 확장을 노리고 있다.
현대상선측은 "현 회장이 회장에 오른 지 5년째가 돼 해운업에 대한 이해가 깊어졌다"면서 "세세한 경영은 노 사장에게 맡기지만 이사회 의장으로서 회사의 큰 그림에 그리는 데는 목소리를 내고 있다"고 말했다.
고 조수호 한진해운 회장의 부인 최은영 신임 회장은 그 동안의 침묵을 깨고 올해부터 적극적인 경영 활동에 나서겠다는 의향을 내비쳤다.
지난해 3월 주주총회에서 사내 이사로 선임되면서 부회장직을 맡아왔던 최 회장은 그간 양현재단 등 복지사업에만 전념했을 뿐 한진해운의 경영에는 관여하지 않았다. 하지만 지난해 연말 회장에 취임한 이후 사세 확장에 대한 강한 의지를 공개적으로 드러냈다.
최 회장은 신년사에서 "우리만의 차별적 경쟁력을 갖추지 못하다면 생존도 위협 받을 수 있다는 위기의식을 가지고 급변하는 글로벌 해운 시황에 대응해 나가자"면서 "세계 최고의 종합물류기업이라는 목표를 향해 모든 구성원이 혼연일체가 되자"고 독려했다.
그는 "올해 예정된 중국 수리조선소 완공을 계기로 그간 추진해온 3자 물류, 전용터미널 사업, 선박관리업 등 해운물류 연계 사업들이 속도를 내 비즈니스 포트폴리오가 강화될 수 있도록 노력해 달라"고 구체적으로 당부했다.
여성 회장들은 직원들에게도 특유의 부드러움으로 다가가고 있다. 현 회장은 매년 임직원에게 여름에는 삼계탕, 겨울에는 목도리나 다이어리 등을 보내 사내에서 호평을 받고 있다. 최 회장도 회사 직원들과 대화를 통해 돈독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해운업계 관계자는 "여성 CEO의 등장으로 해운업계가 그 간의 거친 이미지에서 탈피, 세련되고 개방적으로 바뀌고 있다는 점에서는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다"고 말했다.
유인호 기자 yi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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