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올해 공연계 전망에 대해 급한 인터뷰를 한 적이 있었다. 특별히 기대되는 공연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우리나라를 처음 찾거나 앞으로 올 기회가 많지 않은 악단의 내한 공연에 주목하자”는 답을 해버렸다.
얼떨결에 대답한 것이라 방송에 나간 다음에는 아무래도 잘못했다는 후회가 밀려들었다. 등잔 밑이 어둡다더니, 국내 오케스트라의 공연 중에 볼만한 것이 무척 많고 티켓이 훨씬 저렴한데도 그걸 간과했기 때문이다.
그 중에서도 단연 주목하고 싶은 것은 정명훈이 예술감독을 맡은 후 빠른 속도로 좋아지고 있는 서울시립교향악단(SPO)이다. 그러나 서울시향의 콘서트가 갖는 매력은 향상된 연주력에만 있지 않다. 관객을 끌어 모을 만한 더 많은 요인들이 발견된다.
우선 프로그램 기획 능력이 괄목할 만큼 좋아졌다. 올해 정기공연의 범주를 정명훈이 지휘하는 9회의 마스터피스 시리즈, 객원 지휘자들이 초청되는 4회의 러시아 명곡 시리즈, 3회의 고전주의 협주곡 시리즈로 체계화한 것이다. 이중 마스터피스 시리즈는 정명훈이 지휘한다는 것 외에는 프로그램의 지속적인 일관성을 인정하기 어렵다는 것이 필자의 솔직한 판단이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멋진 이름과 몇 번의 창의적인 프로그램 덕분에 마치 체계적인 학습 과정처럼 포장되었고, 꼭 쫓아다니고 싶은 시리즈로 부각되었다.
이는 국립오페라단이 초심자를 위한 ‘마이 퍼스트 오페라’, 정규 프로그램인 ‘시즌 오페라’, 새로운 레퍼토리 개발을 위한 ‘마이 넥스트 오페라’라는 체계를 잡아가면서 오페라 애호가들의 신뢰를 쌓아간 것과 궤를 같이 한다.
두 번째는 한층 업그레이드된 세계 수준의 지휘자와 독주자들이다. 지휘자들도 나름대로 실력파들이지만 대중적인 지명도를 겸비한 것으로 보자면 프랑크 페터 치머만(바이올린), 유리 바슈메트(비올라), 알렉산더 토라제, 데니스 마추에프, 발렌티나 리시차(이상 피아노), 샤론 베잘리(플루트) 등 세계 공연계에서 청중을 몰고 다니는 최고 수준의 협연자들이 더 돋보인다. 서울시향이 이런 사람들을 불러들일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유엔 공연을 성사시키는 등 높아진 위상을 반영하는 것이다.
자체적으로 발간하는 ‘SPO’라는 월간정보지도 훌륭하다. 회원에게는 무료 배포되고 공연장에서는 프로그램 북을 대신하여 판매되는데, 긴요한 자료집으로 활용할 수 있을 정도로 연주자와 프로그램에 대한 참신한 내용이 많다. 이 모든 것들이 결국은 기획력의 승리라 할 수 있겠다.
음악공동체 무지크바움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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