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에 응어리 졌던 묵은 때는 이제 훌훌 털었습니다. 새해부터는 얼굴에 기름때 잔뜩 묻히고 행복하게 살아 가야죠.”
서울 강서구 등촌동의 한 자동차 정비업소에서 실습생으로 일하는 이기택(20)씨의 새해는 기대와 희망으로 가득하다. 새로운 일자리를 얻게 됐고, 10여년간 헤어져 살았던 어머니를 다시 만났기 때문이다.
이씨는 ‘버림 받은 자식’이었다. 초등 1학년 때 부모는 이혼했고, 함께 살자며 아버지가 데리고 간 곳은 경북의 한 보육원이었다. 그 곳에서 자기보다 한 살 많은 누나와 함께 지냈다. 세상과 부모에 대한 원망만 가득했다. 삶의 목표도 없었다.
지난해 2월 고교 졸업식 날 걸려온 한 통의 전화는 엇나가던 이씨가 마음을 다잡게했다. 11년 전 헤어져 애타게 찾아 헤맸던 어머니였다.
“바로 다음날 엄마를 만났어요. 그런데 이상하죠. 엄마를 꼭 껴안고 펑펑 울고 싶었는데 눈물이 나오지 않았어요. ‘왜 이제야 우릴 찾았냐’며 화도 한번 크게 내고 싶었는데, 엄마 얼굴에 주름살만 보이더라구요.” 어머니는 재혼해 부산에서 살고 있었다.
우울하기만 하던 세상이 아름답게 보이기 시작했다. 꿈도 생겼다. 어머니께 자랑스런 아들이 되고 싶었다. 지난해 3월, 자동차 정비를 배우기 위해 경기 화성에 있는 직업훈련 전문교육기관인 폴리텍대학에 입학했다. 같은 해 9월엔 자동차 정비업체인 SK스피드메이트 서울 동방점에 실습생으로 들어갔다.
정비소 직원 7명 중 그는 막내다. 오전 8시 출근해 밤 9시 퇴근 때까지 엔진오일 교체부터 매장 청소까지 궂은 일은 모두 그의 몫이다. 땀은 결실로 돌아왔다. 2월부터 정비소의 정식 직원이 된다. “기택이가 열심히 사는 게 예뻐서 직원으로 채용하게 됐다”는 게 박성희(39) 사장의 설명이다.
정비소 근처의 고시원에서 혼자 살고 있는 이씨는 짠돌이다. 돈을 모아 정비업소를 차리기 전까지는 한푼도 허투루 쓰지 않겠다는 다짐을 반복한다. 그의 월급은 100만원. 50만원은 꼬박꼬박 은행에 저축한다.
이씨의 새해 소망은 두 가지다. 자동차 정비 자격증 따기와 새 아버지와 터놓고 살갑게 지내기다. 어머니와 새 아버지 사이에는 자녀가 없다. “몇 번 만나긴 했지만 ‘아버지’라는 말이 안 나오네요. 올 핸 꼭 아버지라고 불러야죠. ”
김일환 기자 kevi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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