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책임한 사퇴로 일본 전후 최악의 총리라는 오명을 얻은 아베 신조(安倍晋三) 전 총리가 오랜 침묵을 깨고 일본 월간지에 장문의 수기를 기고해 화제다.
아베 전 총리는 분게이슈주(文藝春秋) 2월호에 ‘나의 고백, 총리 사임의 진상’이라는 제목의 수기를 발표했다. 지난해 9월 전격 사퇴한 이후 4개월만에 밝힌 반성문이자 해명문이다.
눈길을 끈 것은 아베 전 총리가 자신의 지병을 전격 공개한 부분이다. “정치가에게 지병은 금기시해야 하고, 병명과 병의 상태가 알려지면 정치생명이 위험할 수 있다”면서도 “사임에 대해 이해를 구하기 위해서는 내 병에 대해서도 숨기지 않고 고백해야 한다는 생각에 이르렀다”고 말문을 열었다.
그가 밝힌 지병은 ‘궤양성 대장염’. 그는 17세 때 처음 발병한 이 병에 대해 “후생노동성이 특정질환으로 지정하고 있는 난병으로 지금도 원인이 규명되지 않고 있다”고 설명했다. “첫 발병 이후 1년에 한번 정도 병에 시달렸다”는 그는 “엄청난 복통에 화장실로 달려가면 다량의 하혈을 하고, 변기가 새빨갛게 물들었다”는 등 상황을 생생하게 묘사했다. 대장암으로 발전할 위험이 크기 때문에 적출 수술도 생각했지만 “수술을 받을 경우 하루에도 수 없이 화장실에 가지 않으면 안 되는 등 정치가로서의 활동이 크게 지장을 받게 돼 포기했다”고도 밝혔다.
그러나 그가 설명한 사임의 직접적인 원인은 ‘기능성 위장장애’이다. 참의원 선거에서 자민당이 참패한 이후인 지난해 8월 증상이 시작된 후 그는 식욕부진과 설사 등으로 기진맥진한 나날을 보냈다. 한동안 뜸했던 궤양성 대장염의 재발이 악몽처럼 떠올랐다. 선거 대패에도 “절대로 물러나지 않겠다”고 고집했던 그이지만 “더 이상 버틸 수 없는 상황을 맞게 됐다”고 털어놓았다.
아베 전 총리는 수기에서 국민과 언론으로부터 이해를 얻을 수 있도록 충분하게 설명하지 못한 부분을 사과하는 등 반성하는 태도를 보였다. 무엇보다 “궤양성 대장염이 완치에 가깝게 호전됐다”며 “앞으로는 의원으로서 본격적인 보수정치가 일본에 뿌리 내리는데 초석이 되겠다”며 강한 재기의 의지를 보였다.
일본의 정치 풍토상 아베 총리의 수기는 매우 이례적이다. 어느날 갑자기 총리직을 내던진 젊은 정치가에 대해 일본 사회의 유무언의 압력과 비판이 얼마나 혹독한가를 보여준 것이다. 특히 지병까지 밝혀가며 재기의 의욕을 밝힌 것은 생사의 기로에 선 정치가가 마지막 던진 승부수라고 할 수 있다.
도쿄=김철훈 특파원 ch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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