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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년간 침체 '토종 SF' 도약 시동 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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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년간 침체 '토종 SF' 도약 시동 걸렸다

입력
2008.01.15 0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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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인터넷 서점의 작년 초 통계에 따르면 SF(Science Fictionㆍ공상과학소설) 판매량에서 국내 창작물이 차지하는 비율은 6%에 불과하다. 1907년 재일유학생 잡지 <태극학보> 에 소설가 쥘 베른의 <해저 2만리> 가 번역 연재된 이래 한국 SF 역사는 100년을 넘겼지만 번역물 일색의 시장에서 토종 SF가 자리할 공간은 협소했다. 최근 들어 이런 불모의 상황이 개선될 조짐을 보이면서 창작 SF 생산이 점차 활기를 띠고 있다.

새로운 작가군 등장

국내 SF 작가군은 90년대 PC통신 내 장르문학 동호회를 통해 저변이 확대됐다. 온라인에서 호응을 얻은 후 상업적 출간을 통해 이름을 알린 작가도 여럿이다. 90년대 왕성한 필력을 보여준 이성수(40)씨, 현재 가장 지명도 있는 SF 작가 중 하나로 꼽히는 이영수(37ㆍ필명 듀나)씨가 여기에 속한다.

2000년대 들어 과학문화재단이 시행한 SF 공모전인 과학기술창작문예 공모전(2004~2006)은 중편 1,500만원, 단편 700만원의 ‘파격적’ 상금을 제시하면서 양질의 전문 작가를 배출하는 전기를 마련했다. 2004년 당선자인 박성환(30), 김보영(33)씨, 2005년 당선자 배명훈(30)씨가 대표적 작가로, 이들은 한국형 SF의 새로운 가능성을 열고 있다는 평을 받으며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90년대 이후 하위문화의 상상력을 적극 수용하고 있는 주류 문학계에서도 젊은 작가들을 중심으로 SF 요소를 가미한 작품이 창작되고 있다. 유력 문학상 최종후보에 올랐던 박민규씨의 <깊> , 윤이형씨의 <아이반> <판도라의 여름> 등이 그 사례다. 박형서씨는 작년 장르문학 전문잡지 <판타스틱> 에 SF와 친연성이 있는 판타지 단편을 기고하기도 했다.

작품 발표공간 확대

팬덤 수준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던 온라인 SF 창작 공간은 90년대 말부터 <월간 sf 웹진> <정크sf> 등 유력 웹진이 창간되면서 전문성을 높여가고 있다. 현재 운영되는 SF 관련 웹진 중 가장 주목 받는 곳은 <거울> (mirror.pe.kr). 2003년에 만들어져 손꼽히는 SF작가들이 대거 고정 필진으로 참여하고 있는 이 장르문학 웹진은 매달 중ㆍ단편 신작을 업데이트하고, 우수작을 선별한 작품집을 매년 비공개 출간한다.

포항공대에서 발행하는 월간 과학 웹진 <크로스로드> (crossroads.apctp.org)는 2005년 10월 창간호부터 SF 중단편을 1편씩 게재하고 있다. 작가에겐 단편 120만원, 중편 200만원의 높은 고료를 지급하고 있다.

작년 5월 창간된 격월간 잡지 <판타스틱> 은 SF를 비롯한 장르문학 작가들에게 대중과 본격 소통할 수 있는 창작 공간을 제공하고 있다. 이 잡지는 매호마다 SF 비중이 높은 7, 8편의 작품과 더불어 국내외 장르문학 동향, 주요 작가 인터뷰 등의 기사를 싣고 있다. 장르문학 전문 출판사인 행복한책읽기에서도 SF소설 전문 무크지 <해피 sf> 를 펴내고 있다.

해외 유명 SF 작가의 대표작 위주로 출간해오던 국내 출판사들도 창작 SF에 부쩍 관심을 갖고 있다. 특히 작년부터 <누군가를 만났어> (행복한읽기 발행), <잃어버린 개념을 찾아서> (창비 발행) 등 주요 작가들의 우수작을 한데 모은 선집을 발간하며 시장 반응을 타진해보고 있다. 이달엔 복거일, 듀나, 이영도씨에서 김보영, 오경문, 이한범씨까지 최근 20년간의 대표작가 10인의 앤솔로지 <얼터너티브 드림> 이 출간됐다.

이 책을 편집한 황금가지 김준혁씨는 “SF를 다루는 출판사 대부분이 외국 유명 작가에만 매달리다보니 작품은 고갈되고 판권료는 치솟는 상황”이라며 “장르문학의 새로운 시장 개척이 필요한 상황이라 국내 작가 발굴ㆍ양성에 주의를 기울이고 있다”고 말했다. 서울SF아카이브 대표이자 <판타스틱> 초대 편집장을 지낸 박상준씨는 국내 작품 출간에 역점을 두는 SF전문 출판사 ‘오멜라스’를 최근 설립했다.

영화계에서도 국내 SF 작가들과 공동작업을 진행하는 일이 잦아지고 있다. 박성환씨의 작품 <레디메이드 보살> 은 시나리오로 각색돼 김지운 감독의 연출로 제작 완료된 상태이고, 듀나의 단편 <너네 아빠 어딨니?> 는 수필름에서 영화화를 추진하고 있다. 듀나는 현재 한 영화사 의뢰로 시나리오 각색을 염두에 둔 작품을 집필 중이다. 봉준호 감독의 차기작 <설국열차> 의 스토리 작업도 국내 SF작가가 맡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창작강좌 개설

문지문화원 ‘사이’에선 SF 및 판타지 창작법을 가르치는 강좌를 10일 개강했다. 주1회씩 8주간 진행되는 이 강좌는 창작 이론 강의와 습작 실기로 진행된다. SF 부문은 복거일, 박상준씨, 판타지는 작가이자 번역가인 송경아씨가 강의한다. 박상준씨는 “순수문학 작가에 이르기까지 SF에 대한 관심이 확산됐지만, 창작의 기초가 되는 장르 내 규칙, 문법을 교육하는 강좌가 거의 없었다”?“이런 프로그램이 확산된다면 신인 작가 발굴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웹진 <거울> 운영자인 박애진씨는 “고정 필진은 물론, 작품 투고자들의 창작 경향을 보면 SF에 대한 관심이 크게 늘고 있음을 체감한다”고 말했다. 작가 김보영씨는 “아마추어 작가들의 수준을 보면 창작 SF의 잠재력은 충분하다”며 “과학기술창작문예 공모전처럼 SF 작가를 집중 육성할 수 있는 권위있는 제도가 필요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작년 예산 부족으로 과학기술창작문예 공모전을 중단했던 과학문화재단은 올해 SF 공모전 부활을 계획했으나 사업 심의 기관인 과학기술부가 이달 열릴 심의위원회 안건에서 제외, 사실상 개최가 어렵게 됐다.

이훈성 기자 hs0213@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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