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12월 소니는 창사 이래 최대의 실패작이 된 베타맥스 방식의 VTR 생산을 완전 중단했다. 1975년 5월 발매한 베타맥스 방식의 VTR은 처음에는 뛰어난 화질이 호평을 받아 절정기인 1984년에는 230만대나 팔렸다.
그러나 뒤늦게 빅터가 개발한 VHS 방식 VTR과의 표준경쟁에서 밀리면서 판매가 급전직하, 2001년에는 겨우 일본 국내에서 2,800대가 팔렸다. 결국 17년 동안 1,800만대라는 저조한 판매실적에 그친 끝에 베타맥스 VTR은 시장수명이 끝났다. 그러나 이 때의 실패는 소니에 커다란 교훈을 남겼다.
■중요한 것은 기술 자체가 아니라 얼마나 시장에 통용되느냐이며, 시장이 기술을 능동적으로 선택하기보다 공급행위에 수동적으로 반응한다는 자각을 얻었다.
표준경쟁 당시 필립스와 손잡고 베타맥스 기술의 독점을 겨냥한 소니와 달리 빅터는 도시바나 히타치 등에 주문자 상표부착방식(OEM) 등을 통해 활발하게 기술을 제공, 시장을 넓혔다.
VTR과 같은 하드웨어 상품의 운명은 소프트웨어에 달려 있다는 깨달음도 얻었다. 그런 자각이 48억 달러를 들인 컬럼비아 영화사 인수로 시작해 MGM까지 거느린 소니픽처스 설립으로 이어졌다.
■음반회사인 CBS소니와 영상소프트웨어 배급회사인 소니픽처스까지 갖춘 소니는 더 이상 기록매체 표준경쟁을 두려워하지 않고 기술개발에만 몰두할 수 있게 됐다.
미국은 물론 전세계 홈비디오 시장의 선두주자인 워너브러더스가 블루레이 방식으로 차세대 DVD를 제작하기로 결정함으로써 차세대 DVD 표준을 싸고 지난 수년 동안 벌어진 'DVD 전쟁'은 소니를 중심으로 한 블루레이 진영으로 크게 기울었다. 도시바를 비롯한 HD DVD 진영은 미국 라스베이거스 소비자가전쇼(CES)에서 펼치려던 프로모션 행사를 취소할 정도로 큰 충격을 받았다.
■사실 'DVD 전쟁'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1990년대 후반 재기록형 저장매체 표준을 두고 도시바의 DVD-RAM 방식과 소니의 DVD+RW 방식이 맞붙었다.
초기에 DVD-RAM 방식이 널리 채택되면서 소니가 또 다시 고배를 마시는 듯하더니, 최근 DVD+RW 방식의 PC가 대량 출시된 데다 최종 상품은 호환기종이 주류를 이루는 바람에 표준경쟁의 의미 자체가 흐려졌다.
결국 소니는 도시바와의 세 차례 싸움에서 1승1무를 거쳐 귀중한 1승을 올렸다. 삼성과 전략적 제휴를 하고 있는 소니가 도시바와 벌일 다음 싸움이 벌써 궁금해진다.
황영식 논설위원 yshw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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