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얗고 매끄러운 피부, 눈 코 입의 조화는 또 어찌나 아름다운지. 순정만화에서 걸어 나온 듯 조각 같은 외모의 소유자 꽃미남들. 2007년까지 ‘누나’들에게 사랑 받던 캐릭터는 이랬다.
그러나 2008년 수목드라마에서는 꽃미남, 완소남이라고 하기에 뭔가 2% 부족한 캐릭터들이 난무한다. 취향들이 바뀐 탓일까. SBS <불한당> , KBS <쾌도 홍길동> , MBC <뉴하트> 의 주인공 장혁, 강지환, 지성의 매력에서 올해 누나들의 취향을 찾아본다. 뉴하트> 쾌도> 불한당>
이들 3명에게는 공통점이 있다.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는 “멋진 척, 잘난 척을 하지 않는 것”을 매력으로 꼽았다. 그는 “과거 드라마의 주인공은 섣불리 다가설 수 없는 선망의 대상이었지만 요즘은 다르다”면서 “시청자들은 수평적 관점에서 볼 수 있는 친구 같은 주인공을 원하기 때문에 좀 모자란 듯한 캐릭터가 사랑을 받게 됐다”고 분석했다.
윤석진 충남대 국문학과 교수는 “불우한 환경의 권오준, 서자 출신 홍길동, 고아원 출신 이은성 등 최근 수목드라마 주인공들은 여성의 모성본능을 자극하기에 충분하다”며 “여성들의 사회적 영향력이 커지면서 모성을 자극하는 캐릭터들이 드라마의 소재가 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불한당의 권오준(장혁)
공항 출국장 앞. 남녀가 이별 키스를 나눈다. 두 눈에 눈물이 가득 고인 남자 왈 “네게 뒷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다. 오빠 마음 자꾸 아프게 하지 마. 뒤돌아 보지도 말고, 뛰어. 어서!” 신세대 제비 권오준의 여자 떼는 방법이다. 남자는 비행기를 탔을까. 웬걸. 여자가 빚을 져가며 마련한 여비로 다른 여자 꾀기에 들어갔다.
지도도 나침반도 없는 인생. 애써 해야 할 것도 없다. 돈? 없다. 학력? 부끄럽다. 권오준의 경쟁력은 타고난 허우대와 세치 혀뿐이다.
가끔 화면을 가득 채우는 우수에 찬 눈빛, 가진 것도 희망도 없는 삶은 30~40대 여성들의 모성을 자극한다. 안아주고 싶고, 용돈이라도 쥐여주고 싶은 마음. “누나 사랑해.” 권오준의 달콤한 속삭임은 여성들을 TV 앞으로 끌어당기기 충분하다.
▦쾌도 홍길동의 홍길동(강지환)
원작처럼 “호부호형을 허락해 주십시오”라는 무거운 이야기는 없다. <쾌도 홍길동> 의 홍길동은 행인들에게 약을 강매하고, 수틀리면 폭력도 불사한다. 진짜로 게으르고 저밖에 모르고, 별생각도 없는 놈. 군자와 정반대에 선 소인배의 표상이 녀석의 진정한 모습이 아닐까 심히 의심스럽다. 지난주 방송분까지 이 녀석의 소원은 그저 청나라에 한 번 가보는 것이 고작이었다. 쾌도>
그래도 이 녀석 제 여자 위할 줄은 안다. 청나라 말을 가르쳐달라는 것을 핑계로 허이녹(성유리)을 은근히 싸고돈다. 대신 싸워주기도 하고, 돈벌이에도 나선다. 귀찮은 일은 질색을 내기에 ‘주먹 한 번 휘둘러 줬으면’ 하고 은근히 기대를 갖게 되는 우리의 길동. “귀찮아 죽겠네”라는 구시렁거림이 어린 남동생의 투덜거림처럼 밉지 않다.
▦뉴하트의 이은성(지성)
지방의 3류 신설 의과대학 출신. 직업고등학교 제빵학과 중퇴. 대학 역시 검정고시로 들어왔다. 서울의 명문대 레지던트는? 역시 눈치작전과 “받아만 주십시오. 열심히 하겠습니다”는 뚝심으로 얻어낸 자리 결과다. 극중 별명은 ‘꼴통’이다. 더벅머리에 거뭇거뭇한 수염까지 꽃미남, 인텔리와는 한참 거리가 있다.
좀 모자라지만 그의 눈빛만큼은 살아 있다. “환자가 아프지 않았으면 좋겠다. 빨리 나았으면 좋겠다”는 휴머니즘과 진짜 의사가 되겠다는 강한 일념이 그를 돋보이게 한다. 조직폭력배 환자에게 연신 굽실거리면서 비굴한 웃음을 짓다가도 휘두른 주먹을 한 손으로 턱턱 막아내는 모습은 ‘뭔가가 있는 놈’이라는 신비감을 더해준다. 지적으로 무방비 상태에 놓여있는 인물이기에 이따금 보여주는 진지함은 더욱 무게감 있게 다가온다. 물론 결론은 웃기다.
허정헌 기자 xscop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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