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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아리] 영혼 없는 공무원은 떠나라

입력
2008.01.15 05: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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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 부처의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보고를 보면서 어처구니가 없었다. 당혹스럽기도 하고 열이 받기도 하고 화가 나기도 했다. 월탄 박종화 선생이 쓴 역사소설 <다정불심(多情佛心)> 의 한 구절이 새삼 절절이 다가온다.

"공경대부 이하로 만조백관은 모두 다 염량세태를 따르고 이욕에 붙좇는 무리들이다." 어떻게 600년도 더 이전의 왕조 시대 관리를 묘사한 표현이 지금의 대한민국 일부 고위 공무원에게 딱 들어맞는 말이 되는지 참 난감하다.

■ 인수위 보고에서 표변한 면면들

인수위 보고 첫 타자로 나온 교육인적자원부부터 그랬다. 교육부를 오래 취재했던 나로서는 그 충격이 일반인보다 훨씬 심했다. 어제까지만 해도 외국어고 증설은 사교육을 더욱 부추기고, 3불 정책은 흔들릴 수 없다고 주장하던 바로 그 입들이 나서서 외국어고 지정은 시ㆍ도 교육청에, 대입 관련 업무는 한국대학교육협의회에 넘기겠다고 했다.

현행 교육 정책의 문제점에 대한 비판이 그렇게 무성할 때는 입 꼭 다물고 있다가 대통령이 바뀐다니까 며칠 만에 백팔십도 돌아선 것이다.

그 며칠 사이에 있었던 것은 심각한 정책적 고민이 아니라 코드 알아서 맞추기다. 가히 표변이라 할 만하다. 대통령 당선인의 정책 방향에 맞추는 것이 조직의 운명이라고 해도 담당자로서 눈에 뻔히 보이는 부작용에 대한 분석과 건의는 있어야 한다. 그런데 입 싹 씻고 "한 사라(접시) 올리니까 잘 봐주세요"하는 식으로 나오니 이런 후안무치가 없다.

대한민국 뉴스의 주요 산실 중 하나인 국정홍보처 공무원들은 이번에도 "우리는 영혼 없는 공무원"이라는 말로 뉴스를 생산했다.

백악관 기자실을 새로 단장하고 나서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기자들에게 축하 인사를 하는 사진을 들이대도 외국에는 기자실이 없으며 그건 기자실이 아니라 기사송고실이라고 우기던 사람들이었다. 정부 언론 정책의 문제점을 따지는 국회의원들에게 눈을 부라리며 호통을 치던 공무원들이었다.

홍위병 소리까지 들었던 그 열혈투사들이 이제 와서 우리는 영혼이 없다니? 황당하다. 건설교통부 공무원들이 대운하에 관광 기능까지 가미하면 타당성이 있다고 한 것이나 문화관광부 직원들이 대운하 물길에 맞춰 관광자원을 개발하겠다고 보고한 것은 차라리 애교나 아양이라고 봐줄 수 있다.

독일 사회학자 막스 베버가 말한 "영혼 없는 전문가"로서의 공무원상은 현대 공무원의 바람직한 상을 말한 게 아니라 100년 전 유럽 공무원들의 행태를 분석해 비판적으로 지적한 표현이다. 공무원 스스로 할 말이 아니라 수치로 들어야 할 얘기다. 정말 그렇다면 자식 보기 부끄럽지 않겠는가.

우리나라 헌법 제7조는 공무원을 '국민 전체에 대한 봉사자이며 국민에 대하여 책임을 진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에 따라 모든 공무원은 취임할 때 "국민 전체에 대한 봉사자로서…창의와 성실로써 맡은 바 의무를 다할 것을 엄숙히" 선서한다. 국가공무원법이 그토록 꼼꼼한 조항들로 공무원의 신분과 정년을 보장해 준 것은 특정 집단이나 정권이 아니라 국민에게 헌신하라는 취지에서다.

■ 공무원은 정권의 하수인 아니다

이렇게 충성을 가장하는 공무원들은 공무원의 적이다. 노무현 정권 5년 내내 공무원이라면 그렇게 감싸고 돌았던 것이 허탈하다. 4급 이하도 아닌 그런 고위직 공무원들 때문에 대다수 성실한 공무원들이 도매금으로 매도를 당한다. 그런 사람들의 말은 믿을 수가 없다. 왕초에 따라 말이 달라지니 전의 말도, 지금의 말도, 또 5년 후의 말도 믿을 수가 없다.

그들이 진정 충성하는 것은 집권자도 아니다. 승진과 출세라는 개인적 이익이다. 사익에 충성하는 사람은 공무원 자격이 없다. 하여, 당부하건대 스스로 영혼이 없다고 생각하는 공무원은 떠나라. 대한민국은 그대들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이광일 논설위원 ki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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