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의 오랜 염원인 경영권 안전장치가 새 정부에서 마련될 전망이다. 글로벌 스탠더드를 내세워 줄곧 반대해온 재경부마저 재검토 입장으로 선회하고 있다. 대통령직 인수위원회가 7일 "기업인들을 만나 얘기를 들어보라"고 주문함에 따라 재경부와 재계 간 회동도 예상된다.
앞서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은 "기업인들이 마음껏 경제활동을 할 수 있도록 경영권이 적대적 인수ㆍ합병(M&A)으로부터 보호되는 장치를 마련하겠다"고 약속했다.
경영권 보호장치는 환란 이후 자사주 매입과 출자총액제한제도 폐지로 숨통을 트는 듯했으나, 이후 출총제는 부활했다. 이에 따라 외국계 자본이 사실상 대주주인 대기업들은 경영불안 해소를 자사주 매입에만 의존하고 있다. 시가총액 30대 기업 중 절반 이상과 10대 기업 중 7개사의 외국인 지분이 최대주주 지분을 웃돌고 있다.
증권선물거래소에 따르면 상장법인의 자사주 매입액은 지난해 5조6,000억원(10월 기준), 2006년 5조9,300억원에 달했다. 총 40조원이 넘는 막대한 자사주를 보유한 상장사들은 주식 맞교환 등의 방법으로 적대적 M&A에 맞서고 있다.
때문에 전국경제인연합회 등 재계는 "경영권 불안이 자사주 매입으로 이어지면서 투자금이 전용되고 있다"며 대책 마련을 요구해왔다.
재계는 그간 적대적 M&A에 대응해 경영권을 방어하는 장치로 '황금주' '포이즌 필(독소조항)' 등의 도입을 요구해왔다. 그러나 이들 장치가 도입되려면 넘어야 할 산이 많고, 시간도 상당히 걸릴 전망이다.
2006년 상법 개정 당시에도 이런 방안이 아직 시기상조라는 판단에 따라 도입이 무산됐다. 당시 재경부와 법무부는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지 않고 상법상 주주평등 원칙에도 반한다"는 논리를 폈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은 "기존 주주들과의 형평성, 재산권 침해 논란을 감안하면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전망도 내놓고 있다. 이 당선인이 관련된 옵셔널벤처스가 '독소조항'을 도입했으나 결국 회자자금을 빼내는 수단으로 악용된 점도 부담이다.
그러나 재계는 투기자본으로부터 자국 산업을 보호하는 것은 선진국도 예외가 아니다라고 주장한다. 대한상의 관계자는 "주주 평등보다는 어느 게 주주 이익이 더 큰지 선택하는 실용적인 접근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일부에선 경영권 방어장치를 기간산업에 우선 도입하는 방안을 제시하고 있다. 장병완 기획예산처 장관도 지난달 공기업 민영화의 한 방안으로 이를 거론했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 송영관 WTO팀장은 "기업 민영화 과정에서 기간산업에 대한 효율적인 경영권 방어수단이 될 수 있다"고 긍정론을 폈다.
유럽 국가들은 통신 운수 에너지 등 민영화 기업의 황금주를 정부가 보유하는 사례가 많다. 독일 네덜란드 룩셈부르크 등은 M&A 방어수단으로 독소조항을 인정하고 있다.
하지만 유럽연합(EU)은 이런 경제애국주의 정책이 EU법에 위배된다며 폐지를 촉구하고 있다 한편, 지난해 한나라당 이병석, 통합신당 이상경 의원이 각기 추진한 국가 주요산업의 적대적 M&A 방어를 위한 외국인투자규제법은 산업자원부 시행령에 일부 내용을 담는 선에서 정리된 상태다.
■ 황금주(Golden Share) : 기업합병, 이사해임 등 중요 사안에 대해 특정 주주에게 거부권을 부여하는 방안. 기업이나 우호세력에게 보통 주식 1주를 주게 된다.
■ 포이즌 필(Poison Pill) : M&A가 있을 때 기존 주주에게 싼 가격으로 신주를 배정하거나, 물러나는 경영진에게 거액의 퇴직금을 지불하는 제도.
이태규기자 tg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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