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은행의 민영화 밑그림이 그 윤곽을 드러내고 있다.
산업은행은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구상에 따라 향후 정책금융파트와 투자은행(IB)파트로 나뉘어지게 되는데, ▦정책금융부문은 독일재건은행(KfWㆍ Kreditanstalt für Wiederaufbau) ▦IB부분은 싱가포르개발은행(DBS)을 각각 벤치마킹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이런 모델설정에도 불구, 실제 민영화과정에서 보유기업 지분 매각 문제, 지주회사의 지분매각문제 등 넘어야 할 과제는 첩첩산중이다.
개발은행에서 IB그룹으로
DBS는 싱가포르 정부가 경제개발사업을 위해 1958년 만든 정책금융기관이라는 점에서 산업은행과 쏙 빼 닮았다. 하지만 DBS는 99년 지주회사체제로 전환하면서 공공성격을 털어내고 상업금융회사로 변모했다.
DBSH라는 지주회사를 세워 자회사로 DBS 뿐 아니라 증권사, 캐피탈사, 자산운용사, 카드사 등을 둬 아시아 최대의 IB그룹으로 성장했다. 현재의 산업은행 전체와 대우증권을 묶어 지주회사를 만들고 IB그룹으로 키우겠다는 인수위의 구상은 DBS를 벤치마킹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그러나 DBS의 민영화는 엄밀히 말해 '무늬'만 그렇다. DBSH의 실질 최대주주는 싱가포르 정부가 100% 출자해 만든 테마섹. 때문에 DBS는 여전히 정부 영향 하에 운영된다.
인수위의 산업은행 민영화 2단계는 이명박 당선인의 대통령 임기 내에 산업은행의 정부 지분 49%만 우선 매각한다는 것. 51%지분을 정부가 보유한 이상 '이명박 정부'하에서 산은은 여전히 정부은행이다. 인수위측은 그 이후 나머지 지분도 매각한다는 구상이지만, 워낙 나중 일이라 그 때 가봐야 알 수 있다는 게 금융계 시각이다.
정책금융기관 신설해
인수위는 신설 정책금융기관인 KIF(Korea Investment Fundㆍ가칭)를 독일의 KfW같이 만들겠다는 뜻을 공개적으로 밝히고 있다.
KfW는 연방정부 80%, 주정부 20% 출자로 만들어졌으며 모든 채무행위는 연방정부가 보증하는 비영리 공공법인이다. 40년대 전후 복구 및 사회간접자본 건설 지원을 위해 출발한 이 은행은 현재 중소기업 및 지역기관 지원, 수출 및 프로젝트 금융, 개발도상국 금융 협력 업무, 통일관련 기구 관리 등을 전담하고 있다.
우리나라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의 기능을 동시에 하고 있는 셈으로 KIF와 수출입은행의 통합 가능성이 제기되는 이유다. 인수위가 KIF 운용 방침으로 내세운 전대(轉貸)방식은 KfW가 중소기업 및 지방기관 지원 부분에서 사용하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
연ㆍ기금 참여 유도
이러한 산업은행의 발전 비전은 '산업은행 지분 매각이 가능하다'는 전제를 밑바탕으로 하고 있다. 인수위는 산업은행의 자산가치를 감안하면 지주 회사의 지분 49% 매각 시 20조원 가량이 생기며 이 돈을 갖고 중소기업을 지원하겠다는 계산이다.
하지만 상황은 만만치 않다. 1차 매각 지분량이 49%임을 감안하면 지분 매수자가 경영권을 확보할 수 없어 매력이 떨어지고, 우리은행 기업은행 등 정부가 지분을 소유하고 있는 은행들도 조만간 시장에 나올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인수위는 금산분리 규정을 완화해 연ㆍ기금 등의 참여를 최대한 유도한다는 방침을 세웠다. 또 2009년 초 자본시장통합법 시행과 때를 맞춰 지분 매각을 시도해 보험사, 증권사 등 기관 투자가들의 참여를 최대한 이끌어 낸다는 계획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금융권 관계자는 "산업은행 민영화를 서두르고자 한다면 차기 정부는 우리은행, 기업은행보다 산업은행 지분을 먼저 매각한다는 원칙을 세워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대우조선해양 등은 언제 파나
산업은행이 구조조정 등을 이유로 출자해 지분을 소유하고 있는 대우조선해양, 현대건설, 하이닉스반도체 등의 매각도 관심거리다.
산업은행은 그동안 이들 기업 지분에 대해 "최대한 매각을 서두르겠다"는 입장을 밝혀 왔지만 인수위의 민영화안 발표 후 매각이 늦춰질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우량 자산을 먼저 팔면 산업은행의 가치가 떨어진다"는 논리도 대두되고 있다. 이에 대해 인수위는 "산업은행의 지주회사 설립 전이라도 매각할 수 있다"는 입장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관광공사, 한국토지공사 등 산업은행이 갖고 있는 각종 공사들에 대한 지분 처리도 해결해야 할 문제다. 산업은행이 지분을 가진 채 민영화된다면 이들 공사들도 같이 민영화되기 때문.
인수위는 이에 대한 해법은 아직 마련하지 못한 것으로 전해졌다. 금융계 관계자는 "예보나 수출입은행 등 다른 정책금융기관에 넘기는 방안 등이 검토돼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최영윤 기자 daln6p@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