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 대단한 이야기도 아니다. 미국판 <엄마 찾아 삼만리> 일 뿐이다. 그렇다고 구성이 색다르거나 새로운 느낌이나 분위기를 연출하는 것도 아니다. 좀 특별하다면 음악이 영화에서 중요한 매개라는 것 정도. 엄마>
리얼리티를 보자면 커스틴 쉐리단 감독의 <어거스트 러쉬> (사진)는 황당하기조차 하다. 아무리 밴드의 싱어인 아빠 루이스(조나단 리스 마이어스)와 첼리스트 엄마인 라일라(케리 러셀)의 피를 받았다고는 하나 열 두 살짜리 아이 어거스트(프레디 하이모어)의 음악적 재능은 심하다. 어거스트>
바람소리 풀잎이 스치는 소리, 심지어 도시의 소음조차 음악으로 변주해 듣고, 처음 보는 기타를 멋지게 연주하고, 천재적인 작곡 솜씨로 그 나이에 줄리어드 음대에 들어가고, 자기 곡을 뉴욕 센트럴파크 야외공연에서 지휘한다.
상투와 기막힌 우연은 또 얼마나 많은가. 아버지 반대로 생이별하는 남녀하며, 11년이 지나 그 사실을 알고 아이를 찾아 나서는 엄마하며, 아슬아슬하게 비껴가 서로의 마음을 애타게 만드는 것하며, 서로를 모른 채 공원에서 아빠와 아이가 만나 즉흥 연주를 함께 하고 아이에게 용기를 주는 것하며, 같은 장소에서 연주하게 된 엄마와 아들하며, 대칭도형처럼 똑 같은 속도와 방향으로 움직여 아들이 있는 곳에 동시 도착하는 것하며.
이런 과정들을 통하여 <어거스트 러쉬> 는 눈물과 감동을 만들어 낸다. 결코 잊지 못하는 남녀의 극적인 만남에서, 서로의 존재조차 모르던 부모와 아이의 기적 같은 만남에서 나오는 그 감동과 눈물이야말로 어쩌면 너무나 진부하다. 그래서 이 영화를 보고 ‘삼류 최루’라고, 너무 어이없다고 하는 사람들도 있다. 어거스트>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작은 영화는 상영기간 40일(지난해 11월29일 개봉)에, 관객 210만명을 넘어섰다. 웬만한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보다 좋은 성적이다.
그렇게 기를 쓰고 만들어도 지난해 200만명이 넘은 작품이 겨우 9편에 불과했던 한국영화 현실을 감안하면 배가 아프기까지 하다. 그나마 CJ엔터테인먼트가 5%에 불과하지만 이 영화에 투자해서 수익금 일부를 가져온다는 것이 작은 위안이라면 위안이다.
영화가 꼭 휘황찬란하고, 기발하고, 전혀 못 보던 것을 보여줘야 한다는 강박에 사로잡힐 필요는 없다. 우리가 사는 세상에는 특별한 것이 그리 많지가 않다.
우리를 감동시키는 것 역시 우리가 상투라고 말하는 익숙하고 변하지 않는 보편적인 정서와 가치들이다. 멜로든, 판타지든, 가족드라마든, 코미디든 상관없다. 소재도 상관없다. 문제는 얼마나 자기 색깔로 그것을 확인시켜주느냐에 있다. 바로 할리우드가 말하는 ‘좋은 영화의 길’이다.
어디 할리우드만의 길인가. 지난해 200만명 이상 든 한국영화 9편중 3편(그 놈 목소리, 1번가의 기적, 사랑) 역시 이런 ‘감동’의 산물이었다. 그 사실을 새삼 깨달은 듯, 2008년 새해벽두부터 한국영화들이 감동을 펼쳐 보인다.
그것을 위해 10일 나란히 개봉하는 <우리생애 최고의 순간> 은 여자핸드볼 대표선수들의 삶을 지독한 궁기와 상처로 과장하기를 마다하지 않았고, 액션물 <무방비도시> 는 거친 형사와 매혹적인 여자소매치기의 대결보다는 ‘소매치기 어머니와 형사 아들’의 비극적 운명과 용서, 사랑 쪽으로 가는 신파를 마다하지 않았다. 무방비도시> 우리생애>
그 뻔한 거짓말과 의도를 알면서도 <어거스트 러쉬> 를 볼 때와 마찬가지로 가슴 찡하고, 완성도에 대해 냉정한 비판적 태도를 잃어버리는 이유는 뭘까. 혹시 아직도 우리 삶이 팍팍하고 삭막해서 울고 싶은 때가 많기 때문은 아닐까. 어거스트>
이대현 leed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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