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2008 우리가 달린다] ⑤ 유도 김광섭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2008 우리가 달린다] ⑤ 유도 김광섭

입력
2008.01.08 04:35
0 0

동화 속 토끼와 거북은 경쟁상대다. 토끼는 깡충깡충 뛰고, 거북은 엉금엉금 긴다. 그러나 결과는 거북의 승리. 토끼의 자만심과 거북의 성실함을 강조하기 위한 이야기다. 만약 토끼가 결승점을 향해 쉬지 않고 뛰었다면 누가 이겼을까? 토끼가 이길 수밖에 없다. 하지만 한국 유도의 거북이 김광섭(27ㆍ마사회)은 부지런한 토끼들을 제치고 올림픽 금메달을 목에 걸겠다고 꿈꾼다.

거북이로 전락한 토끼

수은주가 영하로 내려간 4일 새벽 서울 올림픽공원 내 몽촌토성 언덕. 올림픽 2연패에 도전하는 이원희(27), 방귀만(25ㆍ이상 마사회) 등은 하얀 입김을 내뱉으며 내달린다. 그러나 김광섭은 한참 뒤에서 걷다가 뛰기를 반복했다. 마치 게으른 토끼와 느린 거북이를 섞어 놓은 것처럼. 김광섭은 한 때 태릉선수촌에서 달리기가 가장 빠른 선수였다. 하지만 도하아시안게임을 코앞에 둔 2006년 10월말 훈련 도중 오른 무릎 연골이 파열되면서 거북이가 됐다.

“광섭아, 올림픽을 생각해서 아시안게임은 포기하자.” 태릉선수촌 주치의의 말에 김광섭은 눈물을 왈칵 쏟을뻔했다. “아시안게임만 뛰고 은퇴해도 좋습니다. 치료해 주세요.” 엉망진창이 된 무릎으로 절룩거리던 김광섭은 끝내 아시안게임에서 동메달을 땄다. “태극기에 부끄럽지 않도록 최선을 다했어요.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국가대표로서 무릎이 부서지더라도 끝까지 싸우고 싶었습니다.”

포기할 수 없는 꿈 올림픽

김광섭은 무릎 연골 95%를 제거하는 수술을 받았다. 그러나 연골 이식 수술은 스스로 포기했다. 연골을 이식하면 일상생활에는 지장이 없지만 유도 선수생활은 끝이기 때문. “마지막으로 한 대회만 더 뛰어보지 뭐!” 2007파리오픈을 시작으로 유니버시아드, 코리아오픈 등에 출전했다. 주무기는 허벅다리 후리기와 업어치기. 그러나 무릎 통증 때문에 메치기는 꿈도 못 꿨다. 궁여지책으로 굳히기만 사용하는 반쪽짜리 선수가 됐지만 꼬박꼬박 동메달을 목에 걸었다.

“올림픽의 꿈은 포기할 수 없습니다. 포기하면 평생을 후회할 것 같아요. 후회하기 싫어서 또다시 도전합니다.” 최근 무릎 통증이 줄어들자 김광섭은 예전처럼 상대를 메다꽂기 시작했다. 유도 66㎏이하급은 유독 강자가 많은 체급. 그러나 무릎만 버텨준다면 김광섭은 세계선수권대회 2연패의 주인공 아라시 미레스마엘리(이란)와 겨뤄볼 만하다.

유능제강으로 목표 달성?

“성공하는 사람은 남과 다른 점이 꼭 있어요.” 인생의 좌우명을 소개한 김광섭은 무릎이 아프다고 투정하지 않는다. 아프면 아픈대로, 실력이 부족하면 부족한대로 현실을 인정한다. 그리곤 자신의 장단점을 분석한 뒤 극복한다. “긍정적인 사고로 뚜렷한 목표를 세우고 반복 훈련을 하면 강해질 수밖에 없어요.” 정신력과 잠재력을 믿는 김광섭은 반쪽 선수 생활 1년 만에 길(道)을 찾았다.

김광섭의 보성고 시절 은사 권성세 연세대 감독은 “김광섭은 폭발적인 힘으로 상대를 메치는 선수였다. 둘도 없는 친구지만 섬세한 유도를 구사하는 이원희와는 정반대였다”고 설명했다. 김광섭은 무릎을 다치면서부터 부드러운 게 강한 걸 제압한다는 유능제강(柔能制剛)의 원리를 깨우쳤다. 그래선지 권 감독은 주저하지 않고 제자를 올림픽 금메달 후보로 꼽았다. 김광섭은 최근 통증이 줄어 거북에서 토끼로 환골탈태하고 있다.

“삶은 도전과 선택의 연속입니다. 유도를 통해 고난을 극복하고 정신력으로 이겨내는 법을 배웠습니다. 올림픽을 통해 마지막 도전을 아름답게 마무리하겠습니다. 실패하더라도 미련은 없지만 제 자신과의 약속은 꼭 지키고 싶습니다.”

이상준 기자 jun@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