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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경미 첫 장편 '미안해, 벤자민'/ 기억 잃은 여자의 퍼즐맞추기…재미·감동까지 함께 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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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경미 첫 장편 '미안해, 벤자민'/ 기억 잃은 여자의 퍼즐맞추기…재미·감동까지 함께 복원

입력
2008.01.08 04: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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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도언-욕망, 이기호-입담, 정이현-강남, 편혜영-그로테스크…. 소설가와 작품 키워드를 이렇게 잇는다면 이들과 동갑내기(1972년생)인 구경미(35)씨는 ‘백수’와 연결될 것이다. 1999년 등단해 소설집 <노는 인간> (20005)을 내면서 자본주의 사회에서 떼밀리듯 혹은 자진해서 룸펜으로 살아가는 이들의 삶과 내면을 핍진하게 그려왔던 구씨가 첫 장편 <미안해, 벤자민> (문학동네 발행)을 펴냈다.

네 명의 인물이 번갈아 화자로 나서는 형식이지만 기실 이 소설의 주인공은 미대 출신의 32세 여성 이연주다. 그녀의 처지는 기묘하다. 밤 9시까지 귀가해야 하고, 통금을 거부하려 가출했더니 바로 정신병원에 끌려간다.

외삼촌 회사에서 ‘실장’이란 직함을 달고 있지만 주어진 일은 결제서류에 사인하는 것과 점심식사 후 정체불명의 약을 먹는 일뿐이다(그녀는 약을 몰래 벤자민 화분에 버린다).

스스로도 영문을 모르는 이 상황의 연유는 그녀가 회피해온, 남자 선배 유광호에 대한 기억과 함께 드러나기 시작한다. 그는 대학 시절 이연주에게 구애했다가 거부 당한 채 죽음을 맞았다. 그녀는 자신이 작업하던 그림 앞에서 그가 목을 매고 자살했다고 기억한다. 소설은 그녀의 기억 속 퍼즐이 하나씩 맞춰지면서 전개되고 급반전한다.

나머지 세 명의 화자와 그 주변인물은 이연주의 기억찾기 여정에 있어 징검돌 역할을 한다. 자기 아내를 정부(情婦)로 둔 사채업자 김길준에게 돈을 빌렸다가 가게를 저당 잡힌 남자 조용희-그는 아내를 경매사이트 매물로 내놓는 등의 기행으로 톡톡한 감초 노릇을 한다-는, 유광호와 빼닮은 용모로 그녀의 잠재 기억을 깨친다.

김길준은 채무자 조용희에게 감시원을 붙였다가 조용희와 함께 있던 이연주의 방어 본능을 자극해 큰 봉변을 당한다. 대학 동창인 이연주의 의뢰로 김길준을 ‘처리’한 안수철이 그녀에게 품은 연정은 아이러니하게 (유광호의) 연정으로 파탄났던 그녀의 기억을 완벽히 복원하는 계기가 된다.

“반듯한 사람보단 하자 있는 사람이 더 와닿는다”는 구씨의 체감을 반영하듯, 이번 소설의 캐릭터들은 작가의 단편 속 그것과 많이 닮았다. 하지만 작가는 익숙한 듯한 인물을 질료로 가슴 후련한 전망과 감동을 지닌 매끈한 장편을 빚어내는 역량을 보여준다.

불완전한 기억을 벗어던지고 과거의 아픈 상처를 기꺼이 짊어지는 이연주의 모습은 구씨의 ‘백수’들이 가슴 한켠에 품어왔을 해방의 욕구를 마음껏 발산한다. 구씨는 “2005년 장편을 다 썼다가 맘에 안 차 ‘엎었던’ 경험이 있는지라 집필 내내 조심스러웠다”면서 “뭐니뭐니해도 소설은 재밌고 감동적이어야 한다고 늘 생각한다”고 말했다.

글ㆍ사진 이훈성기자 hs0213@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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