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남북관계/ 한국 핵문제·경협 연계 시도… 북한은 분리 고수
새로 출범하는 이명박 정부가 남북관계의 기본 원칙으로 표방하는 상호주의가 북한 핵 문제에 어떤 영향을 미칠 지가 사실 초미의 관심사다. 새 정부는 북핵과 남북경협에 대한 전면적 상호주의는 아니라 하더라도 일정 정도 연계를 취할 것으로 보인다. 이에 대한 북측의 대응 여하에 따라 향후 남북관계의 진로가 결정될 전망이다.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자문위원인 남성욱 고려대 교수도 2일 "철도ㆍ도로 연결 등 예산이 많이 들어가는 남북경협 사업은 북핵과 연계 시키는 방향이 적절하다고 본다"고 말했다.
하지만 북한은 그간 핵 문제는 남북간의 문제가 아니라 북미간에 해결할 문제라는 입장을 취해왔다. 이에 따라 현실적으로 북측은 남북경협을 핵 문제와 연관시키는 데 대해 강한 거부감을 표시할 것으로 예측된다.
이른바 남북관계와 북핵 문제의 '선 순환'을 주장해온 참여정부도 북측의 이 같은 입장을 바꾸지 못했다. 지난해 10ㆍ4 정상선언에서도 엄청난 규모의 대북 지원을 약속했으나 북핵 포기에 대한 확답을 담아내지 못한 것도 이 때문이다. 참여정부는 남북관계를 북핵 문제와 분리해 별도의 트랙으로 다뤄왔고, 남북경협을 북핵의 간접적인 지렛대 정도로 사용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새 정부는 남북경협을 북핵 진전을 견인하기 위한 직접적인 지렛대로 사용할 의사를 보이고 있다. 이에 따라 북핵 문제와 남북 경협간의 연계문제를 둘러싸고 남북관계가 다소 경색될 가능성도 높아졌다. 북측은 일단은 북핵과 남북경협의 분리를 계속 시도할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새 정부도 이에 따른 어느 정도의 남북 갈등은 불가피하다는 입장인 것으로 보인다. 남 교수는 이와 관련, "북측 입장에서는 참여정부와 합의한 190개 합의를 새 정부가 이행하지 않을 가능성에 대해 굉장히 걱정을 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북측도 보수정권이 들어선 만큼 남한의 지원을 얻는 데 따른 태도 변화가 있지 않겠느냐는 뜻이다.
새 정부의 입장을 관망하는 태도를 취하고 있는 북측이 향후 새 정부가 내놓을 남북관계 전략에 대해 어떤 입장을 드러내느냐에 따라 새 정부 집권 초기 남북관계의 방향이 정해질 것으로 보인다.
김용현 동국대 북한학과 교수는 "북한에 대한 압박이 단기적으로는 효과가 있을 지 모르지만 일단 경색되면 이를 다시 복원하는 데 상당한 비용이 들 수 밖에 없다"며 "새 정부가 북핵과 남북관계의 완전한 연계 보다는 남북관계의 독자성과 특수성을 고려한 적절한 전략을 수립해야 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 한미관계/ 李정부, 미국보다 강한 입장 땐 엇박자 낼 수도
북핵 협상을 둘러싼 한국과 미국의 공조는 더욱 공고해질 것으로 전망된다. 올 2월 출범하게 될 이명박 정부와 조지 W 부시행정부는 보수 성향이라는 '같은 코드'를 취하고 있다. 북핵 문제 해결에 '당근' 뿐만 아니라 '채찍'도 필요하면 사용할 수 있다는 데도 뜻을 같이 한다.
그러나 각론으로 가면 이해가 다를 가능성도 많다. 한미정부가 처한 상황이 달라 핵 프로그램 신고문제 등 북핵 진전의 장기지연이 발생할 경우 문제해결을 위한 한미간의 방법론에서 이견이 표출될 공산이 있다는 것이다.
미국은 '얼르고' 한국은 '달래는' 대북한 관계의 지난 5년간 모델은 용도폐기 될 수 있다. 한미간의 상황은 역전됐다. 부시행정부는 지난 5년간의 대북 압박기조에서 벗어나 2006년 말 이후 외교적 해결을 지향하고 있는 상황인데다 현재 임기 말임을 감안할 때 핵 신고지연 등 상황변화가 있더라도 채찍을 들기 쉽지 않은 형편이다.
반면 상호주의를 내걸고 북핵과 남북경협을 연계 시킬 의도를 가진 이명박 정부는 핵 신고 등 북핵 문제와 관련한 갈등 국면에서 강경 대응쪽을 택할 공산이 크다.
특히 이명박 정부가 상호주의를 지나치게 강조할 경우 상황변화에 순발력 있게 대응하지 못할 가능성도 있다. 이에 따라 한미 공조가 틈이 벌어질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미국은 새 정부의 대북 강경 기조가 북핵 협상 진전의 장애요인이 된다고 판단할 수 있고, 반면 한국은 미국에 대해 정치적 미봉책을 쓰는 게 아니냐는 상호간의 불신이 조성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당장 눈앞에 놓인 핵 프로그램 신고는 사실상 북미간 정치적 타협 없이는 해결이 어려워질 수 있는 문제이기 때문에 핵 신고ㆍ불능화 등 2단계 조치를 완결하는 과정과 핵 폐기 협상과정에 한미간의 입장차가 발생할 가능성도 있어 보인다. 임기 말인 부시 대통령으로서는 임기 내 핵 폐기가 어려울 것으로 판단할 경우 상황관리에 역점을 둘 가능성이 있고, 이명박 정부는 북핵 폐기 문제에 미국보다 더 강한 입장에 설 수 밖에 없다.
대북관계에 정통한 전문가들은 "최악의 경우에는 '핵을 가진 북한과는 손을 잡을 수 없다'는 김영삼 정부의 대북강경대응에 따라 우리측은 배제된 채 북미간의 교섭으로 1994년 제네바 핵 동결합의가 이루어진 것과 유사한 결과도 빚어질 수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북핵 문제에 대응하는 한미공조가 생각만큼 쉽지 않을 수 있고 실용주의를 표방한 이명박 정부의 외교전략이 험한 시험대에 오를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 북미관계/ 부시 임기 내 가시적 성과 기대… 北설득 노력
한국의 새 정부가 상호주의 원칙을 강조하는 쪽으로 대북 정책을 조정하면 그 파장은 북미 관계 전반에 직접적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미국은 때로 한국과 갈등을 겪기도 하지만 기본적으로는 한미 공조를 바탕으로 대북 정책을 조율해 왔으며 앞으로도 그럴 것이기 때문이다.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의 등장으로 구체화하고 있는 한국의 대북정책 수정 움직임은 과거 정부에서의 통상적인 경우보다 더 북미관계 및 북 핵 문제 해법에 변화를 불러 일으킬 가능성이 높다.
이는 무엇보다 한국의 새 정부 출범이 북한 핵 폐기 과정의 중대 고비에 해당하는 북한의 핵 프로그램 전면 신고 과정과 시기적으로 맞물리기 때문이다.
조지 W 부시 미 정부는 북한의 핵 실험이후 대북 포용정책으로 급선회, 어렵사리 북 핵 불능화 단계까지 이르기는 했으나 북한이 핵 신고를 지연하고 있는 상황에서는 한국의 견제와 미국 내 강경파의 재득세라는 이중적 어려움에 처할 수밖에 없다. 미국에서는 이미 북한-시리아간 핵 커넥션 의혹이 불거진 이후 강경파가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상당한 분위기가 마련됐다고 봐야 한다.
대북 협상 국면을 주도해온 콘돌리사 라이스 국무장관과 크리스토퍼 힐 국무부 차관보는 향후 북 핵 해결 과정에서 추동력이 소진되는 상황을 가장 우려하고 있다.
부시 대통령의 임기가 1년밖에 남아 있지 않아 임기 내에 더 이상의 가시적 성과를 끌어내기 어렵고 북한의 '벼랑끝 전술'에 다시 이용당했다는 평가에 직면하는 상황이 되면 부시 정부의 유화정책은 종언을 고할 수밖에 없다.
미국이 이례적으로 북 핵 6자 회담 틀 안팎에서 북한 군부와 고위급 대화를 갖자고 북측에 제안하고 나선 것은 미측의 이 같은 시간 경과에 따른 초조함을 반영하고 있다. 북한이 핵 포기를 이끌어 내기 위해서는 북한 군부를 움직이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한데 미측은 아직 군부가 핵 포기의 전략적 결단을 내렸다고 보지 않고 있다.
그러나 미국이 한국의 새 정부 등장 및 북한 핵 신고 지연을 이유로 당장 대북 태도를 바꿀 것으로는 보이지 않으며 그런 조짐도 아직 나타나지 않고 있다. 어찌 됐든 이번의 시도가 부시 정부로서는 '마지막 기회'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미국이 북한을 더욱 집요하게 설득하겠지만 그러한 노력이 효과를 낼지가 불투명하다는 점이다. 부시 정부는 일본의 반대를 무릅쓰고 북한에 대한 테러지원국 지정 해제와 대적성국 교역법 적용 종료 등의 준비를 해 왔으나 이 또한 북한의 전향적 조치를 전제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낙관적 전망만을 하기는 어렵다.
정진황 기자 jhchung@hk.co.kr워싱턴=고태성특파원 tsg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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