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시 ‘3분 백’이란 말을 들어 보셨나요? 아니면 ‘5분 백’이라도?
잽싸게 끓여 먹는 즉석라면이라면 모를까, 가방에 왜 3분, 5분이 붙냐며 퉁명스럽게 답하시려고요? 이게 무슨 뜻인지 알고 싶으시다면 한 번 속는 셈치고 가까운 지하철역이나 번화가로 나가보세요.
그냥 가만히 한 곳에 서서 루이비통 가방을 든 여성이 얼마나 자주 지나가는지 시간을 재보세요. 당신이 계신 곳이 신도시 지역의 버스 정류장이라면 5분 정도, 서울 도심 혹은 대학가 주변이라면 3분 가량에 한 번 이상 바로 그 루이비통 스피디(Louisvuitton Speedy) 스타일의 가방, 일명 ‘3분 백’을 지닌 여성과 마주칠 게 뻔하니까요.
만일 서울 명동이나 강남역 인근과 같은 유동인구 밀집지역이라면 이 가방을 든 여성을 보는 데 걸리는 시간이 3분이 아니라 30초까지 떨어질지도 모릅니다.
몇 년 전만 해도 이 명품 가방을 감히 ‘3분 백’이라는 경망스러운 말로 지칭한다는 게 가당키나 했겠습니까. 그런데 언제부터인지 이 명품 가방은 직장여성의 ‘머스트 해브(Must Haveㆍ필수) 아이템’으로, 너무나 보편적인 것으로 탈바꿈해버렸습니다.
한마디로 너도나도 갖고 다니는 가방이 됐다는 말이죠. 지나가다 같은 스타일의 옷을 입은 사람만 봐도 소스라치게 놀라 발걸음을 멈추던 여성들이 도대체 무슨 바람이 불어 똑같은 모양의 브랜드 라인 가방을 길거리에서 3분에 한 번은 눈에 띌 정도로 많이 선택하는 것일까요?
두터운 갈색 바탕에 매우 고전적인 알파벳 문양과 꽃무늬가 내려앉은 100년도 더 된 클래식한 디자인의 이 가방은 무슨 미스터리를 품었기에 2008년 한국 여성의 필수 패션 아이템으로 굳건하게 자리 잡았을까요. 소득수준이 높아져서? 아니면 단순히 명품 가방들이 값이 싸져서? 이도저도 아니라면 업체의 귀신 같은 마케팅 전략이 맞아떨어졌기 때문일까요?
이번 주 <토요 엔터> 는 루이비통 가방을 일례로 들어 과연 한국 여성 소비자들의 어떤 특성이 명품의 대중화(?)를 일궈냈는지 풀어봅니다. 토요>
미국도 아니고 일본도 아닌 한국의 소비자들이기 때문에 그만큼 더 빨리 루이비통을 필두로 한 명품 클래식 브랜드들을 ‘3분 백’으로 거듭나게 한 이유가 있습니다. 물론 신흥 소비대국인 한국시장을 겨냥한 명품업체들의 상술도 한몫하고 있다고 하지만요.
<사치의 나라, 럭셔리 코리아> 의 저자인 김난도 서울대 소비자아동학부 교수는 ‘3분 백’현상의 이면에는 우리 소비자들의 강한 동조의식이 숨겨져 있다고 말합니다. ‘3분 백’이라 불리며 더 이상 명품으로 느껴지지 않을 정도의 흔한 아이템이 됐지만 루이비통에 각인된 상류층의 기호를 공유해 그들과 동조하려는 욕구가 강해서라는 의미입니다. 사치의>
김 교수는 “우리 소비자들은 명품을 쉽게 구입하는 상류층, 부자들과 동조하고 싶은 심리가 굉장히 강하다. 이것도 일종의 열풍인데, 뭐든지 불었다 하면 강하게 부는 열풍 덕분에 이런 현상이 쉽게 나타난다”며 “현대사회에 존재하지 않는 ‘유령’ 같은 신분의 상승을 명품 구매로 달성하려는 생각, 이 때문에 루이비통 가방이 ‘3분 백’의 자리를 차지했다”고 분석합니다. 콩나물값 100원은 깎으면서도 100만원에 달하는 명품 가방은 ‘후다닥’구입하는 한국 소비자의 모습은 이것만이 아닙니다.
스타일을 스스로 만들어 자신의 패션을 완성하기보다, 간단하면서 보편적으로 그 위상을 인정받는 루이비통과 같은 명품 브랜드 아이템을 구입함으로써 손쉽게 ‘만들어진’패션을 향유하려는 성향도 ‘3분 백’을 지탱하는 힘으로 설명되기에 충분하지 않을까요. 그런데 이처럼 패스트푸드를 즐기듯이 명품 구입만으로 자신의 스타일 완성에 종지부를 찍으려는 성향은 패션계 사람들에 따르면 “패션의 수준이 미성숙했기 때문”이라고 하네요.
싸구려 아이템들을 샅샅이 뒤져가며 구입해 잠재의식이 동경하는 스타일 상을 차분히 구성하는 구미 소비자들과 확연히 다른 한국 소비자들의 특징이랍니다. 어쨌든 뭐든지 ‘빨리빨리’서두르기 좋아하는 한국인의 습성이 패션에 접목되면 결국 ‘명품 붐’이라는 부산물을 만든다는 얘기겠죠.
모라비안바젤 컨설팅그룹의 권민 대표는 “지금의 루이비통 백 열풍은 1990년대 초반 고교생들 사이에 유행했던 이스트팩 가방의 인기와 유형이 비슷하다”고 말합니다.
그는 “루이비통 백을 대신할 새로운 트렌드 아이템이 나온다면 이스트팩의 경우처럼 그 열풍은 수년 내에 잦아질 수 있다”며 “동네 앞산을 오르더라도 8,000m 이상 고산지대 등반을 위해 만들어진 노스페이스의 고어텍스 의류를 입어야 하고, 한강 자전거도로를 오가면서 국가대표급의 장비와 옷을 갖추고 자전거와 인라인스케이트를 타야 직성이 풀리는 우리 소비자들에게 루이비통 백의 유별난 인기는 어쩌면 당연한 일”이라는 것입니다.
주변 시선에 신경 쓰느라 혹은 체면 챙기느라, 그리고 무리에서 도태되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는 우리 국민성이 명품에 대한 대중적 열광의 이면에 숨어있음을 부정하긴 힘들 것 같네요.
처음 보는 사람에게도 서슴없이 “몇 살이세요?” 하고 물어보는 유별난 호기심의 소유자들. 여기에 ‘럭셔리 라이프(Luxury life)’를 즐기라고 계속 부추겨대는 수많은 매체들의 홍수. ‘3분 백’을 위해 아까운 돈을 지불하지 않을 수 없는 환경이네요.
하지만 명품 열풍의 원인을 우리 국민성에만 돌릴 수는 없습니다. 까다롭기로 세계에서 둘째 가라면 서러운 한국 소비자들인데, 단지 고소득층과의 쾌속 동조를 위해 값어치도 못하는 명품을 그냥 막 산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겁니다.
외국에 비해 우리 소비자가 유난히 명품 브랜드에 ‘꽂히는’ 이유를 패션 칼럼니스트로 활동하는 인터패션플래닝마케팅 박세은 실장은 이렇게 정리합니다. “패션이 갖는 1차적인 의미는 자기가 갖지 못한 것에 대한 동경이다.
과거엔 돈이야말로 자신의 지위를 말하는 지표였지만 지금은 패션과 스타일이 사회적 위치를 대변하는 마크이고 기호이다.
그래서 명품 브랜드 업체들이 과거 상류층을 주 타깃으로 설정했던 데서 벗어나 지금은 명품을 사기 위해 돈을 모으는 중산층에 포커스를 맞추고 있다. ‘열광의 단계’로 엄밀히 말하자면 명품의 대중화 첫 단계이다.” 박 실장은 “이러다보니 명품이라도 라인의 종류가 늘어나고, 결국 라인 별로 가격 편차가 늘어나면서 자신의 소득 수준에 따라 접근할 수 있는 명품의 수도 많아졌다”고 말합니다.
루이비통 백의 경우 원산지인 유럽의 시장 상황에 따라 가격이 움직이기 때문에 딱 얼마라고 말하기 힘들지만 정품이라도 60만원대의 상품을 살 수 있게 되어 가격 면에서 접근하기 어려운 명품의 굴레는 벗어났다는 것입니다. 쉽게 말해 좀 싸졌다는 얘기죠.
긴 역사를 지닌 클래식 브랜드의 장점 또한 우리 소비자들을 열광케 하는 주요 원인이 됩니다. 박 실장은 “루이비통 스피디 백의 경우 어떤 복장이나 어떤 상황에서도 모나지 않고 어울리는 상품을 원하는 우리 소비자의 취향에 맞는 디자인으로 평가된다”며 “브랜드에 치르는 값이 비싸더라도 클래식 브랜드가 지닌 이런 실용성에 높은 점수를 주는 것”이라고 설명합니다.
자, 이제 어느 정도 ‘3분 백’열풍에 대한 의문이 풀리셨나요. 아니라고요? 아 그렇군요. 바로 숨겨진 명품 생산기업의 교묘한 마케팅 전략에 대한 설명이 빠졌군요. 기업들은 어떻게 서서히 검소한 사람들을 명품에 열광하도록 유도하는지, 어떤 ‘전설’로 후광을 더욱 밝히는지, 계속해서 궁금증을 풀어볼까요.
양홍주기자 yanghong@hk.co.kr이대혁기자 selected@hk.co.kr
■ 한국인이 좋아하는 명품 브랜드 루이비통 압도적
미국 뉴욕에서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하지만 한국에서라면 루이비통 가방을 들어야 할 것 같다. 서기 2008년, 한국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명품 브랜드는 단연 루이비통이기 때문이다.
한국일보가 롯데백화점과 신세계백화점에 의뢰해 얻은 2007년 매출 순위에 따르면, 지난 한 해 두 백화점에서 가장 많이 팔린 명품 브랜드는 루이비통이었다.
루이비통은 전국의 롯데백화점에서 판매된 명품 중 압도적 차이로 1위를 차지했는데 버버리, 샤넬, 구찌, 롤렉스가 뒤를 이었다. 명품관이 있는 본점의 매출 순위만을 공개한 신세계백화점에선 루이비통에 이어 샤넬, 에르메스, 티파니, 구찌가 2~5위를 차지했다.
면세점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브랜드도 역시 루이비통. 2007년 1~4월 면세점 매출 합계에 따르면 한국인들이 가장 선호한 브랜드는 루이비통, 샤넬, 페라가모, 아르마니 콜레지오니, 구찌 순이었다.
일본인들도 마찬가지로 루이비통을 가장 많이 구입했지만, 2~5위는 에르메스, 구찌, 코치, 카르티에 순으로 선호도의 차이를 보였다. 한국인들이 선호하는 브랜드 3위인 페라가모는 13위, 4위를 차지한 아르마니 콜레지오니는 13위권 밖이었다.
루이비통의 승승장구는 한국에만 국한된 현상은 아니다. 미국 시사주간지 비즈니스위크와 인터브랜드가 공동 발표한 ‘베스트 글로벌 브랜드 2007’에서도 루이비통이 최고의 럭셔리 브랜드로 꼽혔고, 국제시장연구조사기관인 밀워드 브라운 옵티머가 영국 파이낸셜타임스와 공동 선정한 ‘브랜드 파워 100위’에서도 럭셔리 브랜드 부문 1위에 올랐다.
하지만 한국에서의 선호 브랜드 변화와 성장 속도는 눈여겨볼 만하다. 2000년과 2002년 홍콩 판야마케팅컨설팅이 국내 면세점 등을 대상으로 조사한 바에 따르면, 한국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명품 브랜드는 구찌였다.
당시 일본인들이 1위로 꼽은 루이비통은 국내에선 5위에 그쳤다. 그러나 루이비통은 무서운 속도로 영토를 확장했다. 브랜드의 성장 속도를 보여주는 신장률에서 루이비통은 전년에 비해 거의 두 배에 육박하는 수치로 2007년 1위를 차지했다. 이어 펜디, 프라다, 카르티에, 티파니, 샤넬이 2~6위에 올랐다.
롯데백화점의 임형욱 홍보과장은 “명품 브랜드는 평균 신장률이 2005년 19.7%, 2006년 15.9%, 2007년 20.3%에 달할 정도로 급성장하고 있다”면서 “매출액을 공개할 순 없지만 루이비통의 인기는 그 중에서도 압도적”이라고 말했다.
박선영 기자 aurevoir@hk.co.kr
■ 사건이 명품을 선전한다
명품은 치밀한 브랜드 마케팅으로 가치를 높이지만 의외의 상황으로 유명세를 타기도 한다.
150년 전통의 루이비통은 모조를 방지하기 위해 만든 모노그램으로 이전부터 유명했지만, 다이애나 영국 왕세자비가 사망할 당시 가지고 있던 가방이었다고 알려지면서 또 한 번 세간에 회자됐다.
지난 2001년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아들 김정남 일행이 일본에서 가짜 여권으로 적발돼 추방당할 당시 김정남이 들고 있던 가방 역시 루이비통이었다. 그의 손목에는 명품 롤렉스 시계가 걸려 있었다. 항간에서는 “여권이 가짜인데 가방과 시계도 가짜 아닐까” 하는 우스개가 돌기도 했다.
의외의 상황에서 대중들에게 알려진 명품이 엄청난 소비로 연결되는 기현상이 생기기도 한다. 1999년 옷 로비 의혹 사건 때 세간에 알려진 페라가모가 대표적이다. 로비에 연루된 고위공직자의 부인과 뇌물을 준 사람들은 처벌되거나 비난을 받았으나, 페라가모는 이 사건을 계기로 고위층 여성들의 대표 브랜드로 알려져 매출이 급성장했다.
또 린다 김 사건 때는 그녀의 트레이드마크처럼 된 에스카다 선글라스와 샤넬 핸드백이 몇 주만에 품절될 정도로 ‘짭짤한’ 홍보 효과를 거뒀다.
니트 의류의 대명사인 이탈리아의 미소니는, 2년6개월 동안 공권력을 농락하다 1999년에 붙잡힌 탈옥수 신창원이 입고 있던 옷으로 알려지면서 화제가 됐다. 나중에 그가 입었던 상의는 ‘짝퉁’으로 밝혀졌지만 원조 미소니는 이미 폭발적 매출을 기록하는 웃지못할 일도 있었다.
사건의 본질과 전혀 상관없이 명품에 관심이 집중돼 브랜드가 대중에게 소개된 결정판은 바로 신정아 사건이다. 신씨가 변양균 전 청와대 정책실장에게서 받은 고가의 반지와 목걸이는 반 클리프 앤 아펠이라는 생소한 브랜드. 일부 보석 마니아들만 안다는 이 브랜드는 사건 이후 ‘신정아 보석’으로 알려지면서 대중성을 확보했다.
또 신씨가 지난해 9월 입국하면서 입었던 200만원대의 돌체앤가바나 재킷과, 앞서 7월 미국으로 갈 때 JFK 공항에서 들고 있던 녹색 가방인 보테가 베네타도 대중의 눈길을 끌었다. 신씨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명품 브랜드 대중화에 기여(?)한 최고의 홍보대사가 돼버린 셈이다.
이대혁 기자 selected@hk.co.kr
■ 그녀는 명품 브랜드의 마케팅에 속고 있다
30대 초반의 직장여성 ‘이명품’씨. 오늘은 대학 동창회가 있는 날이다. 그동안 사 모았던 명품들을 뽐낼 절호의 기회다. 몸에 걸친 옷, 액세서리의 가격만 줄잡아 1,000만원. 월세 보증금보다 비싼 명품들로 치장한 이씨는 약속 장소인 모 호텔 커피숍에서 동창들을 만났다.
그런데, 오! 이런. 유니폼도 아니고 초등학생들이 학교 가방을 멘 것도 아닌데, 모인 대학 동창들이 같은 옷에 같은 가방이라니. 이명품씨의 명품 수집은 이제 끝이 난 걸까.
하지만 웬걸, 그녀는 ‘이제부터는 흔치 않은 디자인만 사겠다’는 굳은 다짐을 새롭게 했다. 이렇듯 명품에 집착하는 이씨는 아직도 “명품은 유구한 역사가 있으며, 장인의 손길이 제품에 녹아 있기 때문에 가치가 있는 것”이라고 강변한다.
이씨가 굳게 믿고 있는 ‘명품의 역사’와 ‘장인의 손길’은 과연 믿을 만한 것일까. 대단히 미안한 이야기지만 그녀는 명품 업체의 마케팅 전략에 속고 있다. 다년간 명품 업체들의 마케팅 전략을 연구해온 마케팅 컨설턴트 김호열씨는 “명품을 선택하는 이유로 유구한 역사를 말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알고 보면 기껏해야 수십년에 불과한 업체들이 많다”고 말했다.
프라다의 역사는 30년, 페라가모는 80년, 샤넬은 100년을 넘지 못한다는 게 김씨의 설명이다. 그는 또 “핸드백으로 크게 성장한 한 업체는 말 안장을 만들던 시절까지 끼워 넣는 등 말도 되지 않는 역사를 마케팅에 이용하는 경우가 다수 있다”고 비판했다.
그렇다면 명품들이 광고하는 장인의 손길, 수작업 실태는 어떨까. 김씨는 “유명 브랜드의 가방 같은 인기 품목 한 가지만 해도 1년에 1만 개 이상이 팔리는데 수십 종에 달하는 제품을 고작 수백 명의 장인이 일일이 손으로 만들 수는 없을 것”이라고 의혹을 제기했다. 바느질 몇 번, 최종 검사 등만 장인이 하고 ‘수공품’ 딱지를 붙인다는 얘기다.
한 가지 더. 한국 업체가 만든 제품에 명품 브랜드 상표만 붙인 ‘한국산 명품’을 고가에 판매하는 경우도 있다. 한 마케팅 전문가는 “C사의 경우 한국 업체에 디자인부터 생산까지 다 맡긴다는 얘기를 들었다”면서 “이것은 명백한 소비자 기만행위”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명품 업체들의 대단한 마케팅 전략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고가의 명품을 살 수 없는 20대 젊은층에게 다가가기 위해 오리지널보다 값싼 서브브랜드를 내놓고 잠재적 고객 끌어들이기에 나선다. 17만원짜리 티파니 딸랑이, 14만원짜리 구찌 지우개, 7만5,000원짜리 에르메스 연필 등에 열광했던 어린이가 성인이 되면 명품 핸드백에 자연스럽게 손이 가게 되는 식이다.
이런 모습을 감추기 위해서일까. 대부분 명품 업체들의 홍보실은 ‘인터뷰 사절, 사진자료 미공개’ 전략을 고수한다. 언론과 일정한 거리를 두겠다는 것이다. 하긴 이들 업체들의 본사에서는 한국을 ‘유행 후진국, 판매 선진국’으로 판단하고 있다니, 그럴 만도 할까.
한국은 뉴욕이나 파리처럼 세계의 유행을 주도하지는 못하지만 제품 판매에서는 큰 이익을 남길 수 있다는 얘기다. 김호열씨는 “한국을 팔아먹기에만 좋은 시장으로 판단한 나머지, 한두 가지 모델을 싼 가격에 대량공급하고 있다”면서 “희소성이라는 명품의 기본 조건도 포기한 것 같다”고 말했다. 이명품씨의 동창생들이 너도나도 똑같은 가방을 들고, 똑 같은 목도리를 걸치게 된 이유가 여기 있다.
허정헌 기자 xscop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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