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기 침체에서 탈출해 전후 최대 경기확장 국면을 맞고 있는 일본 정부는 첨단기술의 개발과 활용을 통한 총체적인 혁신을 일본의 새로운 국가성장전략으로 채택했다.
1980년대 중반 시작된 거품경기로 심각한 좌절감을 맛봤던 일본 경제는 혹독한 구조조정 등 뼈를 깍는 노력에 힘입어 2002년부터 상승국면에 진입했다. ‘이자나기경기’(1965년 11월~70년 7월)를 넘어서는 최장기 호황으로 발전하며, 일본 사회는 다시 활력과 자신감을 되찾았다.
그러나 ▦저출산ㆍ고령화에 따른 인구 및 노동력의 감소 ▦지역간 격차의 고정화 ▦심각한 재정 적자 ▦중국과 인도의 급부상 등 향후 일본 경제가 극복해야 할 과제는 매우 크고 무겁게 다가왔다.
결국 일본 정부는 이를 해결하기 위해 ‘첨단기술을 통한 총체적인 혁신’을 국가전략으로 내세운 것이다. 예를 들면 이런 것이다. 새로운 의술로 노인 치매를 예방하고, 다양한 인간형 로봇을 개발해 노동력을 확보하는 등 첨단기술을 해결사로 활용하겠다는 것이다. 이는 자연스럽게 국내외의 비즈니스로 연결돼 일본 경제의 성장을 견인할 수 있다고 기대하고 있다.
첨단기술 전략이 본격 추진된 것은 아베 신조(安倍晋三) 정부 아래서였다. 아베 총리는 2006년 9월 취임 직후 국회 소신표명연설에서 “우리나라가 21세기에도 ‘아름다운 나라’로서 번영을 계속하기 위해서는 안정된 경제성장의 지속이 불가피하다”며 “첨단 기술 개발 등을 통한 혁신을 성장의 동력으로 삼겠다”고 선언했다.
이후 일본 정부는 2025년까지의 장기전략지침인 ‘이노베이션(혁신) 25’와 ‘차세대자동차ㆍ연료 이니셔티브’ 등 구체적인 실천 전략을 마련했다.
정부와 기업, 연구소, 전문가와 시민들이 참여해 만든 각각의 보고서는 “첨단 기술로 경제 대국의 지위를 유지ㆍ발전시겠다”는 일본 사회의 결의문이라고 할 수 있다. 아베 총리의 돌연한 사퇴 이후 등장한 후쿠다 야스오(福田康夫) 총리도 지난달 ‘일본경제의 진로와 전략’을 발표하는 등 첨단기술 중심의 혁신 모델을 재확인했다.
일본 정부는 재정개혁을 위해 지출을 줄여야하는 형편이지만, 첨단기술에 대한 지원은 강화했다.
2007년 예산에서 차세대지능로봇(19억엔)과 첨단의료기술분야(26억엔), 환경사회구축형 광촉매산업 창출 프로젝트(11억엔)와 희소금속대체재료개발분야(11억엔), 이분야ㆍ이업종융합 나노기술분야(18억엔) 등은 신규로 책정했다.
경제산업성은 ▦혁신적 연구개발의 효율적인 추진과 ▦지식의 융합 등을 통해 혁신을 가속화하는 환경의 정비 ▦연구ㆍ기술인재의 육성과 유동화의 촉진 ▦지역사회에서의 과학기술의 진흥 ▦독립행정법인에 의한 혁신 창출 구조 만들기 등 크게 5가지 관점에서 예산을 편성했다고 밝혔다. 최근 야마나카 신야(山中伸彌) 교토(京都)대 교수가 ‘인공만능줄기세포(iPS)’를 만들어내자 5년내 100억엔 지원 등 거국적 지원시스템을 구축하고 있는 것도 첨단기술에 대한 일본 정부의 집념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일본 정부의 국가성장전략에 대해 “일종의 자각이며 깨달음”이라고 설명한다. 일본 사회를 옥죄었던 불황의 터널을 빠져나온 후 주위를 살펴보니 일본의 기술력이 어느새 세계 최고의 경지에 올라 있었다.
불황을 탈출했다는 안도감을 강한 자신감으로 업그레드시킨 일본 정부는 자신들의 ‘일등 기술’이야말로 생존과 성장을 위한 핵심 무기임을 깨달았고, 본격적으로 휘두르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일본의 기술력이야 이미 세계가 인정하고 있는 것이지만, 최근 들어 더욱 빠른 속도로 진화하고 있다. 도요타자동차 등 자동차업체를 중심으로 개발이 진행중인 차세대 하이브리드카와 전기자동차, 연료전지 등은 실용화와 대중화를 눈앞에 두고 있다.
노인간병 등 고령화사회의 소중한 동반자로서 기대를 모으고 있는 인간형 로봇 등 첨단 분야에서의 연구개발 성과도 인상적이다. 부품ㆍ소재분야에서는 더욱 강하다. 컴퓨터 하드디스크용 유리기판의 세계 점유율이 80%에 달하는 호야 등 첨단 기술을 보유한 중소기업의 수가 손으로 꼽을 수 없을 정도로 많기때문이다.
일본인들을 특히 흥분시키고 있는 것은 독보적인 환경기술이다. 태양전지와 바이오연료, 열전변환기술 등 신에너지개발 및 에너지절약 기술은 세계 최고 수준이다.
1973년 오일쇼크 이후 에너지절약 기술의 개발에 몰두해 온 일본은 최고의 환경기술과 노하우를 가진 나라로 우뚝 서게됐다. 최근 지구온난화가 지구적인 문제로 부각되자 일본은 환경기술을 활용해 돈도 벌고, 국제적 위상도 향상시킬 수 있게 됐다며 회심의 미소를 짓고 있다.
후쿠다 야스오(福Kк? 총리는 올해 신년사에서 “이른바 일본의 ‘환경력’은 향후 일본이 성장하는데 커다란 ‘강점’”이라며 “일본이 보유한 세계 최첨단 기술을 각국에 전파함으로써 세계에 공헌하고 커다란 역할을 수행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 아시아 인재 적극 유치… 두뇌 거점국化"90세에도 안심생활" 日 경제 전략은
일본 정부는 이노베이션(혁신)과 정보기술(IT), 아시아의 성장동력 등을 적극 활용해 일본사회가 직면한 난관을 극복하겠다는 새로운 경제전략을 마련해 운용하고 있다.
일본 정부의 경제재정자문회의(의장 후쿠다 야스오 총리)가 마련한 '일본경제의 진로와 전략'이 그것이다. 일본이 지향하는 경제상과 그것을 실현하기 위한 재정운영 방침을 담은 중기 전략으로, 향후 일본 정부의 경제 정책은 여기에 맞춰져 책정되게 된다. 일본 정부는 지난해 1월 이것을 각의 결정했고, 후쿠다 야스오(福田康夫) 총리도 지난달 내용을 보완해 자신의 경제 비전으로서 제시한 바 있다.
새 전략에 따르면 일본 사회가 직면한 과제는 ▦인구감소 등에 따른 성장 제약 ▦지역간 불균형과 양극화 현상 ▦심각한 재정 상황 등이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일본 정부는 세계와 함께 발전할 수 있는 열린 국가, 인생 90세에도 안심하고 생활할 수 있는 나라, 인구 감소의 시대에도 경제성장을 지속할 수 있는 국가 등 3가지의 국가상을 제시했다.
구체적으로 신 전략은 인터넷 등 정보기술(IT)을 이용해 모든 국민을 연결하는 효율적인 사회를 구축하겠다는 방침을 담았다. 첨단 기술의 개발과 실용화를 통해 의료와 간병, 육아 등 국민 생활과 직결되는 분야를 새로운 산업으로 육성하는 방안 등도 모색하고 있다.
또 도시와 지방,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연계를 강화해 고용과 수요를 활성화하는 등 효율적인 협력 시스템을 지속적인 경제성장으로 연결시키겠다는 생각이다. 젊은이와 노인이 함께 일할 수 있는 노동시장을 만들겠다는 것은 심각하게 진행되고 있는 저출산ㆍ고령화 문제를 극복하기 위한 고육지책이다.
신 전략은 또 아시아의 활력을 일본 경제의 성장 동력으로 활용하겠다는 뜻을 밝히고 있다. 일본이 강세를 보이고 있는 환경기술 분야에서 선도적인 역할을 수행해가며 일본 주도의 시장을 구축하겠다는 의지를 담았다.
각국과의 적극적인 협력을 통해 지적재산권보호 제도를 정비하는 등 투자 환경을 대폭 향상시키겠다는 계산도 있다.
후쿠다 총리는 이를 위해 한국과 중국, 인도, 아세안 등을 포함하는 아시아경제ㆍ환경공동체의 구축을 추진할 것이라고 선언했다. 향후 10년 동안 아시아의 인재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여 일본을 아시아 인재 육성의 거점국으로 만들겠다는 뜻도 밝혔다.
도쿄=김철훈 특파원 ch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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