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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아! 최요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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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아! 최요삼

입력
2008.01.08 0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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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대체 주먹에 맞은 충격이 얼마나 크기에 건강하고 잘 훈련된 복서가 뇌사(腦死)를 당한단 말인가. 그것도 솜으로 쿠션을 넣은 글러브를 낀 주먹에. F=ma, 체중에 좌우되고 내뻗는 펀치의 가속도에 비례한다.

스피드와 파워로 단련된 복서의 정확한 펀치는 도로를 주행하는 750㎏~1톤의 승용차가 쳐 받는 것과 같다. 이런 힘이 2~3회 모이면 거대한 몸집의 미식축구 선수가 전속력으로 달릴 때의 파워와 비슷하고, 이런 펀치 3~4회의 충격은 맨땅에 철제 빔을 박는 강철 해머를 1m정도 휘둘렀을 때의 그것과 다르지 않다. 그만큼 위험한 경기다.

■비운의 챔피언 최요삼씨는 일기장에서 "이제는 끝내고 싶다. 권투를…, 맞는 게 두렵다"라고 써 놓았다. 그는 크리스마스 날 열린 WBO 인터컨티넨탈 플라이급 첫 방어전에 성공했으나 곧바로 의식을 잃었다.

한 때 WBC챔피언으로 4차 방어전까지 치렀던 그가 주위의 만류에도 35세의 나이에 굳이 링에 다시 오른 이유는 몰락한 한국 권투를 일으켜 세워야 한다는 사명감이었다.

시종 우세한 경기를 펼쳤으나 마지막 10여 초를 남기고 쓰러졌고, 다시 일어나 승리를 확인했으나, 곧바로 의식을 잃었던 과정은 바로 우리 권투계의 모습이다.

■김기수 홍수환 장정구 유명우 등으로 전성기를 구가했던 한국 권투는 90년대 이후 각종 프로스포츠에 관객을 잃고, 종합격투기 쪽에 선수를 빼앗기면서 침체기로 들었다. '노 챔프' 시대까지 맞았으나 지난해 9월 그의 WBO 챔피언 등극으로 불씨가 생겼다.

그 역시 '헝그리 복서'의 전형이었지만 항상 "돈보다 더 소중한 것이 있다"고 말했다. 권투 중흥과 어려운 사람 돕기를 소중히 여겼음을 주위에선 다 알고 있다. 장기기증과 신체이식으로 6명의 생명을 구하고, 수십명의 환자에게 희망을 주었다. 그의 신념과 사랑을 존경하며 명복을 빈다.

■그러나 안타까움과 고마움을 생각하는 것으로 사안을 마무리할 순 없다. 그렇게 위험하고 챔피언조차 '두려워했던' 경기에 안전의식이 그다지 부족했다는 사실을 믿을 수 없다.

쓰러진 직후 손의 붕대를 풀거나 체온을 보호하는 기본조치도 하지 않았고, 주차장에서 앰뷸런스를 제대로 빼내지 못해 시간이 지체됐으며, 가까운 대형병원을 두고 지정병원을 찾아 멀리까지 옮겨갔다고 한다.

게다가 협회가 이런 일에 쓰려고 모았던 기금까지 알 수 없는 이유로 없어졌다고 한다. 책임을 가리고 대책을 세워야 그의 신념과 사랑을 이어갈 수 있다.

정병진 논설위원 bjju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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