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이 그쳤으니 기름을 또 닦아야지. 살아 생전 뽀얀 갯돌을 못 볼 줄 알았는데 많이 좋아졌네.”
2일 새해 첫 기름 방제작업을 시작한 충남 태안군 근흥면 앞바다의 가의도 해안. 구랍 30일 악천후로 중단된 방제작업이 나흘 만에 재개된 이날 마을주민들과 자원봉사자들이 삼삼오오 모여 조약돌을 닦고 있었다. 시꺼먼 기름으로 덮였던 해변이 본래의 속살을 되찾아 가면서 표정도 밝아졌다.
이복례(78) 할머니는 “하루라도 빨리 기름을 닦아내야 홍합도 따고 미역도 걷어 손주들 용돈도 줄 거 아녀…”라며 웃음을 지었다. 이 할머니는 “노인네들이 섬을 깨끗하게 해놓을 테니 많이 좋아졌다고 써달라”는 주문도 덧붙였다.
가의도의 유일한 30대인 주성진(39)씨는 누구보다도 바삐 몸을 움직이고 있다. 93세의 할머니와 10년 전 교통사고로 몸을 못쓰는 어머니를 모시고 있는 주씨는 “어떻게 해서든 섬을 살려 내야 두 어른을 편히 모실 수 있다”며 조약돌을 힘차게 닦는다. 박덕선(82) 할머니는 “내가 세상 뜨더라도 자식들 살게 하려면 부지런히 닦아야 한다”며 손을 놀렸다.
선박사고지점에서 10여㎞ 떨어진 가의도는 40가구, 주민 73명이 살고 있는 작은 섬이다. 주민 대부분이 60∼80대 노인이지만 사고 전까지만 해도 매일 갯가에서 10만원 이상의 수입을 올려 외지로 나간 자식들을 도와줄 정도로 손꼽히는 부자섬 이었다.
하지만 기름이 유출되면서 가의도는 만신창이가 됐다. 해경방제본부에 따르면 사고 직후 북서풍을 타고 내려가는 유출기름을 가의도가 온몸으로 받아내 안면도와 서해전역 오염을 막았다.
그 대신 가의도 해안선 12㎞은 쑥대밭으로 변했다. 기름띠는 섬의 주수입원인 전복, 해삼양식장(59㏊)을 덮쳤다. 한동안 절망에 빠졌던 주민들은 하루평균 200여명의 자원봉사자가 몰려오면서 힘을 내기 시작했다. 주민들도 “조금만 더 하면 예전으로 돌아갈 수 있다”며 희망의 불씨를 살려놓았다.
주민들과 해경방제본부에 따르면 현재 마을 앞쪽과 오염 피해가 큰 백사장 쪽으로 자원봉사자들이 꾸준히 기름제거 작업을 벌여 피해지역 30% 정도를 복구했다. 하지만 가의도 북쪽지역은 바람이 조금만 불어도 배를 대기 힘들어 손도 대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 마을 주동복(74) 이장은 “마을 사람들이 똘똘 뭉쳐 누가 시키지 않았는데도 섬 구석구석을 돌며 기름제거작업을 하고 있다”며 “다만 노인들이 많아 방제작업에 한계가 많다”고 말했다.
가의도=글ㆍ사진 이준호기자 junhol@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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