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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멸의 화가-반 고흐展 '데생화가 반 고흐' 재발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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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멸의 화가-반 고흐展 '데생화가 반 고흐' 재발견하다

입력
2008.01.08 04: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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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부터 경솔하게 유화에 뛰어들어 아무런 발전 없이 비싼 도구만 망쳐버리고 빚더미에 올라앉아 환멸을 느끼는 사람들의 슬픈 얘기를 많이 들었다. 난 처음부터 그렇게 될까봐 두렵고 무서웠다. 그런 실패를 피할 유일한 길은 스케치를 충실히 하는 것이라 생각했고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다. 스케치를 성가신 과정이라고 생각하는 대신 아주 좋아하게 되었다.”(1882년 8월)

“테오야, 너무 힘들다고 생각되면 언제라도 말을 해라. 즉시 유화를 그만두고 경비가 덜 드는 데생을 하마.”(1888년 4월 9일)

드로잉은 오랜 세월 미술사의 홀대를 받아왔다. 유화의 그늘에 가려진 채 밑그림의 수단으로나 여겨졌다. 그러나 극빈했던 빈센트 반 고흐(1853-1890)에게 드로잉은 최고의 화가가 되기 위한 최후의 보루였다. 마음껏 유화를 그릴 수 없었던 그는 재료 살 돈이 없을 때에도 연필과 펜만은 놓지 않았다.

데생화가로서의 반 고흐가 주목받고 있다.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불멸의 화가-반 고흐’전이 개막 40여일을 넘기면서 유화뿐 아니라 드로잉, 수채화, 판화 등 종이작품도 관람객들의 눈길을 사로잡고 있다.

반 고흐는 화가의 생을 산 10년 동안 800여점이라는 엄청난 수의 유화를 남겼지만, 드로잉은 그보다 많은 1,100여점에 이른다. 이번 전시에 소개된 22점의 종이 작품은 모두 네덜란드 오텔로의 크뢸러 뮐러 미술관에서 선별해 온 것들로 반 고흐의 미술 입문과정을 보여주는 초기작들이다.

헤이그에서부터 뉘넨에 이르는 네덜란드 시기의 데생작품들은 주로 농촌과 농민들의 생활상을 담고 있다. 특히 인물화에 대한 관심이 남달랐던 반 고흐답게 인물 탐구와 표현에 심취한 데생이 많이 제작됐다.

빠른 손놀림으로 무연고 노인들을 위한 작은 교회의 신도석을 그린 ‘교회에서’, 외로운 양로원 노인을 그린 ‘커피 마시는 노신사’, 창녀였던 연인 시엔의 고민에 빠진 모습을 그린 ‘앉아 있는 여인’ 등은 유화에서 볼 수 있는 반 고흐만의 독특한 인물 표현의 원형을 보여준다. 다듬어지지 않은 거친 선 처리는 앞으로 이어질 유화작품의 거친 붓터치와 윤곽선 처리를 엿보게 한다.

가끔씩 보이는 어설픈 인물처리나 묘사는 입문 초기 표현기법의 미숙함에 기인하는 것도 있지만, 가난한 사람들의 투박한 모습을 꾸밈 없이 묘사하려는 정직함에서 비롯된 것이기도 하다. ‘감자 깎는 여인’의 허벅지가 지나치게 길게 묘사되는 등 인물의 신체비례가 비정상적인 것은 모델의 집이 너무 좁아 정확한 측정을 위한 충분한 거리를 확보하지 못했기 때문.

실제로 힘든 노동을 하고 있다는 느낌을 주는 ‘밭 가는 여인’은 동작을 제대로 표현해 내기 위해 어느 정도 해부학적 요소를 왜곡한 경우로, 파리의 화상들로부터 좋은 평을 들은 작품이다.

서순주 전시 커미셔너는 “유화작품에 치중된 반 고흐 예술에 대한 관심으로 인해 데생화가로서의 그의 재능이 잘 알려지지 않았다”며 “반 고흐가 끊임 없는 훈련과 수련을 거듭한 데생은 화가로서의 발전과정에서 유화작품과 불가분의 관계를 맺고 있다”고 평가했다.

박선영 기자 aurevoi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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