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제주시 중앙중학교의 과학동아리 회원 학생들은 점심시간이 되면 부리나케 식사를 마치고 과학실로 달려간다. 20여명이 머리를 맞대고 일상생활에서 쓰는 것들을 주제로 어떤 문제가 있는지, 어떻게 개선하면 좋겠는지 의견을 나눈다.
‘신발’을 주제로 토론을 벌였을 때 한 학생은 “눈이 쌓인 곳을 걸을 때 신발 속으로 눈이 들어와 발이 젖는 게 싫다”고 하자 “탄력성 좋은 스판 소재로 발목을 연장한 신발을 만들자” 등의 아이디어가 속출했다. 한국과학문화재단 ‘이달의 과학문화상’을 수상한 고용철(47) 교사가 이끄는 과학동아리의 모습이다.
“중학생만 돼도 방과 후 특별활동 시간을 따로 내기가 어렵습니다. 대신 매일 점심 자투리 시간을 활용하자고 해서 만든 토론시간이죠. 아이들 아이디어 중 몇 개는 실제로 제작돼 과학탐구대회나 발명대회에 나갑니다.” 과학동아리 지도교사로서 고 교사의 수상실적은 화려하다.
전국온라인과학탐구대회 최우수상 2회, 우수상 1회, 전국과학탐구발표대회 최우수상 2회, 전국청소년과학탐구대회 은상 2회, 동상 5회, 전국과학전람회 우수상, 대한민국학생발명품경진대회 금상 1회, 은상 2회, 동상 5회, 전국학생과학발명품경진대회 은상 3회, 동상 10회의 수상 등 입이 벌어질 정도다. “비결이 있어서가 아니라 그저 남들보다 열심히 할 뿐”이란다.
고 교사는 이런 방식으로 부임한 학교마다 과학반, 발명반을 활성화 시켰다. 2000년에는 대한민국과학축전을 본 따 제주과학축전을 처음 만들었다. 축전행사를 계기로 만난 초ㆍ중ㆍ고 교사와 대학 교수, 박물관 연구사 등 80여명을 모아 청소년과학탐구연구회도 결성했다.
마음 맞는 과학 교육자들은 서로서로 동기 부여를 하며 여름방학에 제주지역 초ㆍ중생을 대상으로 한 제주해변과학캠프를 열고, 교사연수를 갖고, 벽지 학교를 찾아가 과학교실도 연다. 실제로 제주지역은 고 교사의 노력 덕에 청소년 과학활동이 활발해졌다.
“91년 과학교육단체총연합회가 주최한 교원 연수에서 특별활동 과학반 운영사례 발표를 들었어요. 그 때 이건 해볼만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 때 발표를 했던 선생님은 제가 직접 사사하지 않았는데도 제 은사로 모시고 있습니다.”
처음엔 스스로 재미있겠다고 생각해서 시작했지만 이젠 제자들을 보면서 보람을 느낀다. 옛 과학반 학생 중에는 고교에 진학했는데 과학반이 없어 교사를 부추겨 과학동아리를 만든 야무진 고교생도 있고, 금호공대에 진학해 발명동아리를 만들어 계속 자료를 주고받는 대학생도 있다.
“그렇게 열심이던 아이들이 입시 때문에 관심을 잃을 땐 아쉽지요. 학원 간다고 끝나자마자 뛰쳐나가는 걸 봐도 속상 하구요. 바라는 건 제가 다른 학교로 옮긴 뒤에도 이 열정이 계속됐으면 하는 겁니다.”
이제 고 교사는 학교의 범위를 뛰어넘어 제주지역을 기반으로 과학활동이 정착할 수 있도록 과학문화센터를 법인화 하는 꿈을 키우고 있다. 이공계 기피니 위기니 해도 고 교사 같은 ‘호기심 풀무질꾼’은 오늘도 교실 한 켠에서 어린 과학자의 꿈을 열심히 키우고 있다.
김희원기자 h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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