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지영씨도 루이비통 가방이네요, 왜죠?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지영씨도 루이비통 가방이네요, 왜죠?

입력
2008.01.08 04:35
0 0

3분에 1명씩 지나간다, 그 백을 든 한국 여자들이…

혹시 ‘3분 백’이란 말을 들어 보셨나요? 아니면 ‘5분 백’이라도?

잽싸게 끓여 먹는 즉석라면이라면 모를까, 가방에 왜 3분, 5분이 붙냐며 퉁명스럽게 답하시려고요? 이게 무슨 뜻인지 알고 싶으시다면 한 번 속는 셈치고 가까운 지하철역이나 번화가로 나가보세요.

그냥 가만히 한 곳에 서서 루이비통 가방을 든 여성이 얼마나 자주 지나가는지 시간을 재보세요. 당신이 계신 곳이 신도시 지역의 버스 정류장이라면 5분 정도, 서울 도심 혹은 대학가 주변이라면 3분 가량에 한 번 이상 바로 그 루이비통 스피디(Louisvuitton Speedy) 스타일의 가방, 일명 ‘3분 백’을 지닌 여성과 마주칠 게 뻔하니까요.

만일 서울 명동이나 강남역 인근과 같은 유동인구 밀집지역이라면 이 가방을 든 여성을 보는 데 걸리는 시간이 3분이 아니라 30초까지 떨어질지도 모릅니다.

몇 년 전만 해도 이 명품 가방을 감히 ‘3분 백’이라는 경망스러운 말로 지칭한다는 게 가당키나 했겠습니까. 그런데 언제부터인지 이 명품 가방은 직장여성의 ‘머스트 해브(Must Haveㆍ필수) 아이템’으로, 너무나 보편적인 것으로 탈바꿈해버렸습니다.

한마디로 너도나도 갖고 다니는 가방이 됐다는 말이죠. 지나가다 같은 스타일의 옷을 입은 사람만 봐도 소스라치게 놀라 발걸음을 멈추던 여성들이 도대체 무슨 바람이 불어 똑같은 모양의 브랜드 라인 가방을 길거리에서 3분에 한 번은 눈에 띌 정도로 많이 선택하는 것일까요?

두터운 갈색 바탕에 매우 고전적인 알파벳 문양과 꽃무늬가 내려앉은 100년도 더 된 클래식한 디자인의 이 가방은 무슨 미스터리를 품었기에 2008년 한국 여성의 필수 패션 아이템으로 굳건하게 자리 잡았을까요. 소득수준이 높아져서? 아니면 단순히 명품 가방들이 값이 싸져서? 이도저도 아니라면 업체의 귀신 같은 마케팅 전략이 맞아떨어졌기 때문일까요?

이번 주 <토요 엔터> 는 루이비통 가방을 일례로 들어 과연 한국 여성 소비자들의 어떤 특성이 명품의 대중화(?)를 일궈냈는지 풀어봅니다.

미국도 아니고 일본도 아닌 한국의 소비자들이기 때문에 그만큼 더 빨리 루이비통을 필두로 한 명품 클래식 브랜드들을 ‘3분 백’으로 거듭나게 한 이유가 있습니다. 물론 신흥 소비대국인 한국시장을 겨냥한 명품업체들의 상술도 한몫하고 있다고 하지만요.

<사치의 나라, 럭셔리 코리아> 의 저자인 김난도 서울대 소비자아동학부 교수는 ‘3분 백’현상의 이면에는 우리 소비자들의 강한 동조의식이 숨겨져 있다고 말합니다. ‘3분 백’이라 불리며 더 이상 명품으로 느껴지지 않을 정도의 흔한 아이템이 됐지만 루이비통에 각인된 상류층의 기호를 공유해 그들과 동조하려는 욕구가 강해서라는 의미입니다.

김 교수는 “우리 소비자들은 명품을 쉽게 구입하는 상류층, 부자들과 동조하고 싶은 심리가 굉장히 강하다. 이것도 일종의 열풍인데, 뭐든지 불었다 하면 강하게 부는 열풍 덕분에 이런 현상이 쉽게 나타난다”며 “현대사회에 존재하지 않는 ‘유령’ 같은 신분의 상승을 명품 구매로 달성하려는 생각, 이 때문에 루이비통 가방이 ‘3분 백’의 자리를 차지했다”고 분석합니다. 콩나물값 100원은 깎으면서도 100만원에 달하는 명품 가방은 ‘후다닥’구입하는 한국 소비자의 모습은 이것만이 아닙니다.

스타일을 스스로 만들어 자신의 패션을 완성하기보다, 간단하면서 보편적으로 그 위상을 인정받는 루이비통과 같은 명품 브랜드 아이템을 구입함으로써 손쉽게 ‘만들어진’패션을 향유하려는 성향도 ‘3분 백’을 지탱하는 힘으로 설명되기에 충분하지 않을까요. 그런데 이처럼 패스트푸드를 즐기듯이 명품 구입만으로 자신의 스타일 완성에 종지부를 찍으려는 성향은 패션계 사람들에 따르면 “패션의 수준이 미성숙했기 때문”이라고 하네요.

싸구려 아이템들을 샅샅이 뒤져가며 구입해 잠재의식이 동경하는 스타일 상을 차분히 구성하는 구미 소비자들과 확연히 다른 한국 소비자들의 특징이랍니다. 어쨌든 뭐든지 ‘빨리빨리’서두르기 좋아하는 한국인의 습성이 패션에 접목되면 결국 ‘명품 붐’이라는 부산물을 만든다는 얘기겠죠.

모라비안바젤 컨설팅그룹의 권민 대표는 “지금의 루이비통 백 열풍은 1990년대 초반 고교생들 사이에 유행했던 이스트팩 가방의 인기와 유형이 비슷하다”고 말합니다.

그는 “루이비통 백을 대신할 새로운 트렌드 아이템이 나온다면 이스트팩의 경우처럼 그 열풍은 수년 내에 잦아질 수 있다”며 “동네 앞산을 오르더라도 8,000m 이상 고산지대 등반을 위해 만들어진 노스페이스의 고어텍스 의류를 입어야 하고, 한강 자전거도로를 오가면서 국가대표급의 장비와 옷을 갖추고 자전거와 인라인스케이트를 타야 직성이 풀리는 우리 소비자들에게 루이비통 백의 유별난 인기는 어쩌면 당연한 일”이라는 것입니다.

주변 시선에 신경 쓰느라 혹은 체면 챙기느라, 그리고 무리에서 도태되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는 우리 국민성이 명품에 대한 대중적 열광의 이면에 숨어있음을 부정하긴 힘들 것 같네요.

처음 보는 사람에게도 서슴없이 “몇 살이세요?” 하고 물어보는 유별난 호기심의 소유자들. 여기에 ‘럭셔리 라이프(Luxury life)’를 즐기라고 계속 부추겨대는 수많은 매체들의 홍수. ‘3분 백’을 위해 아까운 돈을 지불하지 않을 수 없는 환경이네요.

하지만 명품 열풍의 원인을 우리 국민성에만 돌릴 수는 없습니다. 까다롭기로 세계에서 둘째 가라면 서러운 한국 소비자들인데, 단지 고소득층과의 쾌속 동조를 위해 값어치도 못하는 명품을 그냥 막 산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겁니다.

외국에 비해 우리 소비자가 유난히 명품 브랜드에 ‘꽂히는’ 이유를 패션 칼럼니스트로 활동하는 인터패션플래닝마케팅 박세은 실장은 이렇게 정리합니다. “패션이 갖는 1차적인 의미는 자기가 갖지 못한 것에 대한 동경이다.

과거엔 돈이야말로 자신의 지위를 말하는 지표였지만 지금은 패션과 스타일이 사회적 위치를 대변하는 마크이고 기호이다.

그래서 명품 브랜드 업체들이 과거 상류층을 주 타깃으로 설정했던 데서 벗어나 지금은 명품을 사기 위해 돈을 모으는 중산층에 포커스를 맞추고 있다. ‘열광의 단계’로 엄밀히 말하자면 명품의 대중화 첫 단계이다.” 박 실장은 “이러다보니 명품이라도 라인의 종류가 늘어나고, 결국 라인 별로 가격 편차가 늘어나면서 자신의 소득 수준에 따라 접근할 수 있는 명품의 수도 많아졌다”고 말합니다.

루이비통 백의 경우 원산지인 유럽의 시장 상황에 따라 가격이 움직이기 때문에 딱 얼마라고 말하기 힘들지만 정품이라도 60만원대의 상품을 살 수 있게 되어 가격 면에서 접근하기 어려운 명품의 굴레는 벗어났다는 것입니다. 쉽게 말해 좀 싸졌다는 얘기죠.

긴 역사를 지닌 클래식 브랜드의 장점 또한 우리 소비자들을 열광케 하는 주요 원인이 됩니다. 박 실장은 “루이비통 스피디 백의 경우 어떤 복장이나 어떤 상황에서도 모나지 않고 어울리는 상품을 원하는 우리 소비자의 취향에 맞는 디자인으로 평가된다”며 “브랜드에 치르는 값이 비싸더라도 클래식 브랜드가 지닌 이런 실용성에 높은 점수를 주는 것”이라고 설명합니다.

자, 이제 어느 정도 ‘3분 백’열풍에 대한 의문이 풀리셨나요. 아니라고요? 아 그렇군요. 바로 숨겨진 명품 생산기업의 교묘한 마케팅 전략에 대한 설명이 빠졌군요. 기업들은 어떻게 서서히 검소한 사람들을 명품에 열광하도록 유도하는지, 어떤 ‘전설’로 후광을 더욱 밝히는지, 계속해서 궁금증을 풀어볼까요.

양홍주기자 yanghong@hk.co.kr이대혁기자 selected@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