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2008 한국 가족의 자화상] <3> 集-뿌리내리는 다문화 가정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2008 한국 가족의 자화상] <3> 集-뿌리내리는 다문화 가정

입력
2008.01.08 04:31
0 0

■ 외국인 며느리가 전통가정 지키는 한 축으로…

“우리마을 금덩이여, 금덩이. 허허…”

2006년 6월 전남 영암군 미암면 남산2리 ‘부암마을’ 주민들은 8년 만에 처음으로 아기 울음소리를 들었다. 주민 곽상연(46)씨가 첫 아들 태원이를 얻었기 때문이다. 19개월 된 태원이는 요즘 집안은 물론 동네 어른들의 귀여움을 독차지하고 있다.

곽씨는 여타 농촌 총각처럼 시골에서 농사를 짓다 나이 마흔이 되도록 배우자를 찾지 못했다. 그러다 1999년 12월 한 종교단체의 주선으로 아내 로웨나 에이 앤티푸에스토(37ㆍ필리핀)씨를 만나게 됐다.

“태원이 엄마의 당시 인상이 무척 선했어요. 한국 노래를 좋아하는 걸 보고 친근감도 생겼고….” 곽씨는 2000년 2월과 4월, 필리핀과 한국에서 번갈아 혼례를 치르고 고향에서 어머니를 모시고 신혼생활을 시작했다. 그리고 6년 뒤 태원이가 태어나면서 곽씨는 3대가 함께 사는 오붓한 가정을 꾸리는 작은 행복을 얻게 됐다.

‘비(非) 한국인 며느리’를 보는 곽씨 어머니 김순향(78)씨의 눈빛에는 고마움과 대견함, 걱정스러움이 섞여 있다. 김씨는 “처음엔 말이 안 통해 답답했는데 지금은 김치찌개 된장찌개도 끓이고 한국인이 다 됐다”며 “손자까지 생겼는데 앞으로 농사일, 제삿일 같은 대소사를 어떻게 가르쳐야 할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어렵게 가정을 꾸렸지만 외국인 며느리라고 해서 우리 전통과 미풍양속까지 소홀히 해선 안되지 않겠냐는 생각인 것이다.

힘들게 만난 인연인 만큼 서로 아끼며 잘 살아야 하겠지만 주변의 현실은 그렇지 않다. 곽씨 부부는 이따금 폭력이나 이혼 등 가정불화를 겪고 있는 다문화 가정의 소식을 들을 때마다 안타깝다고 한다.

곽씨는 “넉 달 전인가, 한국인 남편이 필리핀 아내와 자식을 살해했다는 소식을 듣고 너무 놀랐다”며 “어떻게 사람이 그럴 수 있냐”며 탄식했다. 로웨나씨도 “임신을 한 상태에서 남편으로부터 구박을 받으며 이혼을 강요 당한 외국인 주부도 봤다”며 “부부싸움은 물론 술, 담배도 안 하는 남편이 고맙다”고 말했다.

경북여성정책개발원에 따르면 2006년 한 해 혼인신고를 한 전국 농어업 종사 남성 8,596명 중 3,525명(41%)이 국제결혼을 택했다. 지방자치단체의 지원과 장려에 힘입어 전국 농어촌 지역에서는 ‘필리핀댁’ ‘베트남댁’ 가족을 흔히 볼 수 있게 된 것이다.

영암군만 해도 어느덧 여성 결혼 이민자가 181명, 한국인 남편 사이에 낳은 자녀가 252명이나 된다. 부암마을 이장 윤선옥(62)씨는 “인심 만큼은 우리 마을이 전국 제일이었는데, 세상도 변하고 사람도 떠나 아쉽다”며 “누가 오더라도 도와주고 정을 나누며 잘 살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영암=글ㆍ사진 박원기기자 one@hk.co.kr

■ 국제결혼 급증' 결혼이민자 9만명 육박

한국인 배우자와 국제결혼으로 맺어진 다문화 가정이 늘면서 지원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특히 8만7,964명의 국제결혼 이민자 중 86%가 여성이라는 점에서 이들의 국내 환경ㆍ문화 적응과 자녀 교육에 대한 지원이 절실한 것으로 나타났다.

외국인 여성이 한국으로 시집오는 순간 맞닥뜨리는 가장 큰 문제는 언어와 문화 차이. 모국어는 물론 영어마저 통하지 않는 경우가 많아 의사소통에 애를 먹는 것은 물론, 농촌 생활을 하게 되는 동남아 여성의 경우 '게으르다'는 오해를 받는 경우가 잦다.

더운 기후인 모국에선 뙤약볕 아래서 오랜 시간 일한다는 게 드문 일인데, 그것이 한국적 상황에선 '게으르다'는 말 한마디로 치부되기 일쑤다. 더구나 비교적 늦게 결혼한 한국인 남편들 때문에 출산에 대한 스트레스도 높다.

정일선 경북여성정책개발원 수석연구원은 "남편과 시댁이 국내에서 의지할 곳 없는 외국인 며느리에게 '시집 왔으니 아기부터 낳아라' '한국에 왔으니 한국 사람이 돼라'는 식의 일방적 강요를 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2세 교육도 점차 사회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국제결혼 가정의 자녀는 지난해 기준으로 4만4,258명으로, 이 중 6세 이하가 59.8%, 12세 이하가 32.5%다. 외모 차별이 여전하고 부와 교육의 대물림이 심한 우리 사회의 특성을 감안하면, 막연한 대책만으로는 이들의 학교생활 적응을 도와 진학ㆍ취업을 무난히 이끌어 내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

국제결혼 가정 자녀들이 학교에서 겪는 어려움은 통계에서도 나타난다. 2005년 보건복지부 조사에 따르면 이들의 17.6%가 학교에서 집단 따돌림을 경험했다. 집단 따돌림의 이유는 '엄마가 외국인이라서(34.1%)'가 제일 많았고, '의사소통이 잘 안 돼서(20.7%)' '특별한 이유 없이(15.9%)' 등이 뒤를 이었다.

윤희원 서울대 국어교육과 교수는 "학업성취도는 가정환경과 경제사정의 영향을 크게 받는 경향이 있다"며 "다문화 가정 자체를 위하기보다는 저소득층 전체를 위한 교육환경 개선을 통해 이를 해결해야 한다"고 말했다. 윤 교수는 또 학교 적응 문제 해결을 위해선 "교사들의 전문성과 '다문화 교육'역량을 키우는 일이 우선"이라고 지적했다.

<저작권자>

박원기기자

■ 일자리 많은 도시에서도 국제결혼 활발

국제결혼을 통한 다문화 가정의 확산은 농촌보다는 일자리 선택의 폭이 넓은 도시에서 더 활발하다. 정기선(47ㆍ사진) 경기도가족여성개발원 정책개발실장은 “도시 지역의 다문화 가정은 농촌보다 가부장적 특성이 덜 나타나는 반면, 주로 소득 등 경제적 측면에 관심을 집중하는 경향이 있다”며 “한국어, 예절 등 한국생활 적응을 위한 기본적인 사회교육 시스템을 제도적으로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정 박사는 “도시의 다문화 가정은 한국인 남편과 외국인 아내의 연령 차가 농촌보다 훨씬 적고, 주부들의 경제적 독립도 어느 정도 보장되면서 가부장적 색채가 덜하다”며 도농 다문화 가정간 차이를 설명했다.

도시 지역에서는 ‘한국인 남편-외국인 아내’가 아닌 ‘외국인 남편-한국인 아내’형식의 부부 결합도 눈에 많이 띈다. 특히 공단이 밀집한 경기 안산, 시흥 지역의 경우 외국인 남성 근로자가 다수를 차지하면서 이같은 현상이 두드러진다. 정 박사는 “경제적 여건이 도시 생활을 좌우 하다 보니 이들에 대한 한글 교육 등 사회적응 훈련이 소홀해 질 수 밖에 없다”며 “이들의 한국 사회 적응을 돕기 위한 제도 마련에 힘써야 한다”고 말했다.

이태무 기자 abcdefg@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