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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규제 길로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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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규제 길로틴

입력
2008.01.08 04: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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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m의 높이에서 떨어지는 40㎏의 크고 날카로운 칼날. 프랑스 혁명 직후의 공포정치를 상징하는 길로틴(guillotine), 즉 단두대(斷頭臺)는 지금 봐도 전율을 느끼게 한다. 그러나 흉물스런 외관과 달리, 이 형구의 도입 동기는 무척 평등하고 인도적이었다. 외과의사이자 혁명세력이었던 조제프 기요탱(1738~1834)이 1789년 “죄인의 사회적 신분과 직위에 관계없이 모두에게 공평하고 고통이 덜한 사형방법이 필요하다”며 당시 남프랑스나 이탈리아 등에서 사용되던 장치를 소개했고, 국민의회는 혁명의 이념과 맞아떨어지는 이 제안을 수용했다.

▦ 길로틴은 기요탱의 여성명사인 기요틴을 독일어 또는 영어로 읽은 것이다. 그러나 1792년 4월 희대의 노상강도를 첫 제물로 삼은 ‘자비로운 기계’를 만든 사람은 그의 외과학회 동료였다. 그런데도 그의 이름을 붙인 것은 ‘인도적 제안’을 비꼬기 위한 의도라는 말도 있고, 발음의 울림이 좋아서 그랬다는 해석도 있다. 혁명 후 수년 동안에만 2만명 이상의 목숨을 앗아간 길로틴은 20세기 초반까지도 공개처형의 도구로 사용되며 악명을 떨쳤지만, 1977년 9월 마지막으로 사용된 뒤 1981년 프랑스의 사형제 공식폐지로 용도폐기됐다.

▦ 지난해말 국제사면위원회 기준으로 한국도 사형폐지국가로 분류되는 등 사형제 폐지가 세계적 추세인 오늘의 관점에서 길로틴은 공포와 야만, 그 자체다. 그러나 ‘평민이라고 죽음의 고통까지 커야 하느냐’는 인도적이고 개혁적 배려에서 출발한 길로틴의 태생 비밀은 알게 모르게 우리의 의식과 언어습관에 깊이 들어와 있다. 얼마 전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과 민관 경제연구기관장들이 함께 한 자리에서 나온 ‘규제 단두대’ 표현은 대표적 사례다. 우리 경제의 활력을 되살리려면 규제를 개혁하는 수준을 넘어 아예 단두대로 보내야 한다는 뜻이다.

▦ 김종석 한국경제연구원장에 따르면, 규제 단두대는 ‘규제를 집행하는 부처가 규제의 정당성과 타당성을 입증해야 하고, 그렇지 못한 규제는 원칙적으로 폐지하는 것’이다. 멕시코 헝가리 우크라이나가 이 제도를 도입해 효과를 보는 등 국제적으로 인정받은 방법이란다. 그는 또 “기업의 규제완화 체감도가 낮은 것은 등록되지 않은 숨은 규제가 많기 때문”이라며 미등록 규제 일제 자수기간을 설정해 획기적으로 규제털이에 나설 것을 건의했다. 기업의 규제 스트레스는 알겠는데, 당선인의 친기업 찬사를 업고 단두대까지 들고 나오니 왠지 섬뜩하다.

이유식 논설위원 ys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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