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지역 특수학교 교사 김모(46ㆍ여)씨는 손목에 견디기 힘든 통증을 느껴 병원을 찾았다. 첫 진단명은 손목터널증후군. 파라핀욕, 초음파치료, 전기치료 등을 매일 거르지 않았지만 나아지기는커녕 통증이 다른 부위까지 번졌다.
다른 병원을 찾아 받은 진단명은 류마티스 관절염. 그러나 혈액검사 결과에서는 아무런 문제가 나타나지 않았다. 좀처럼 낫지 않는 통증 치료를 위해 병원을 10여곳이나 전전한 끝에 김씨는 자신의 병이 섬유근통증후군(Fibriyalgia)이라는 최종 진단을 받았다.
누구나 크고 작은 통증을 달고 산다. 신체에는 충격과 스트레스, 대상포진 같은 질환의 후유증으로 통증이 생긴다. 통증은 단순히 아픈 것이 아니라 몸에 문제가 생겼으니 빨리 해결하라는 ‘조기 경보’다. 그러나 원인도 모른 채 평생 고통을 주는 통증 질환도 있다. 병원을 순례하지만 꾀병으로 오해 받아 마음고생을 하기도 한다. 30, 40대 여성에게 많이 발병하는 섬유근통증후군도 이런 통증 질환이다.
■ 증상이 무려 50여 가지
섬유근통증후군은 주로 근육과 뼈, 인대가 이어지는 부분에서 통증이 생겨 목과 어깨를 타고 전신으로 퍼져 나간다. 관절염처럼 후끈후끈 쑤신다거나, 근육이 뻣뻣하게 경직되고, 독감에 걸린 듯 만성 피로에 시달리기도 한다. 심지어 잠을 못 이루고 우울해지는 등 정서적인 장애도 나타난다.
섬유근통증후군은 50여가지 증상이 나타나는 전신성 통증 질환이라 하나로 규정짓기는 쉽지 않다. 공식적인 통계는 없지만 전체 인구의 2%가 이 질환으로 고통받고 있다. 학계에서는 섬유근통증후군 환자의 10% 정도는 심한 통증과 정서적 장애로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없는 것으로 보고 있다.
발병 원인은 명확히 밝혀지지 않고 있다. 유전, 뇌 기능 문제,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근육세포 이상 등과 관련이 있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학계에서는 근육계보다 신경계나 면역체계 이상이 발생 원인이라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이 질환은 이처럼 생소한데다 환자가 호소하는 통증의 부위와 강도가 다양해 다른 질환으로 오인해 엉뚱한 치료를 받을 가능성도 크다.
■ 다른 질환으로 오진하기 쉬워
섬유근통증후군은 증상이 일반적 통증과 혼동되기 쉽지만 다른 질환과 구별되는 특징이 있다. 전신성 동통과 압통, 전신 경직, 수면장애, 만성 피로 등이 바로 그것이다. 머리에서 발끝까지 전신에 걸쳐 통증이 생기고, 신체 통점 18곳을 4㎏ 정도의 힘으로 눌렀을 때 11곳 이상이 아프다.
또 아침에 깨었을 때 전신이 뻣뻣해 잘 움직여지지 않는 경직상태가 30분 정도 지속되기도 한다. 환자의 75%가 이런 증세를 호소한다. 수면 부족과 함께 힘든 일을 하지 않았음에도 만성 피로에 시달린다.
이 질환의 주요 증상인 전신 통증과 만성 피로가 나타나는 유사 질환도 적지 않다. 대표적으로 오진하는 질환은 근막통증후군, 만성피로증후군, 류마티스 관절염, 심인성 동통 등이다.
근막통증후군은 근육이 딱딱해져 통증이 유발되는 질환이다. 주로 잘못된 자세와 스트레스로 어깨나 뒷목 주변 근육이 장시간 긴장함에 따라 근육에 영양분과 산소가 부족해져 발생한다. 남녀 발병률이 비슷하고, 전신이 아닌 국소 부위에서만 통증이 생기며 만성 피로나 수면장애는 나타나지 않는다.
만성피로증후군은 힘든 일을 하지 않았는데도 쉽게 지치고 피곤하며 몸이 나른해지는 피로 증세가 6개월 이상 만성적으로 나타난다. 그러나 만성 피로 외에도 37.5~38.6도 정도의 미열이 있으며 인후두 통증, 임파선 비대 등이 자주 나타나고 전신 통증과는 관련이 없다.
류마티스 관절염은 손가락, 팔꿈치, 무릎 등의 관절이 좌우대칭적으로 염증을 일으켜 붓고, 통증을 일으키고, 굳어진다. 특히 새벽에 통증이 심하며 몸이 쇠약해지고 미열이 동반되는데 관절을 중심으로만 통증이 나타난다.
심인성 동통은 질환이 없거나 신체적 원인으로 설명할 수 없는 통증이 나타나는데 심리적 요인으로 발생한다. 환자가 느끼는 증상이 일정치 않고 특정 압통 부위가 아닌 전신에 걸쳐 통각이 민감해져 통증이 생긴다.
■ 전문치료제 개발, 운동 병행해야
섬유근통증후군 치료는 약물을 중심으로 운동요법과 심리요법을 병행한다. 그동안 마땅한 치료제가 없어 통증을 일시적으로 멎게 하거나 수면을 도와주는 약물치료가 전부였다.
하지만 지난해 11월 섬유근통증후군 전문 치료제인 리리카(성분명 프레가발린)가 공식 승인됨으로써 효과적인 통증 완화와 기능 개선이 가능해졌다.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은 지난해 말 리리카를 ‘2007년 10대 의학혁신’으로 선정했다. 300만~600만명의 미국 섬유근통증후군 환자들의 삶의 질을 개선시켰다는 이유에서다.
한양대 류마티스병원 배상철 원장은 “그동안 섬유근통증후군 치료제가 없어 수면제나 항우울제 등과 같은 약으로 증상을 邱?쳐榴蔑구?“이제 공식 승인받은 전문 치료제가 나온 만큼 정확한 진단 아래 환자가 올바른 치료를 받을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섬유근통증후군을 적극적으로 치료하기 위해서는 운동과 심리요법을 병행하면 도움이 된다. 이 병에 걸리면 환자가 가만히 있어도 온몸이 아프기 때문에 움직이지 않아 근력이 떨어지고 점차 체력이 약해진다. 따라서 비록 통증으로 힘들지만 하루 몇 분 정도라도 운동을 시작해 점차 운동량을 늘리면 증상을 개선할 수 있다. 근육을 늘려주는 맨손체조, 윗몸 일으키기, 걷기 등 유산소 운동 등이다.
<도움말= 한양대 류마티스병원 배상철 원장, 세브란스병원 마취통증의학과 윤덕미 교수>도움말=>
메디컬일러스트=박성남 medicalart@naver.com
권대익기자 dkwo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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