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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진화 시대 대기획-이제는 경제다] 2부 (4) 협상과 합의가 이뤄낸 하모니:스웨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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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진화 시대 대기획-이제는 경제다] 2부 (4) 협상과 합의가 이뤄낸 하모니:스웨덴

입력
2008.01.08 04: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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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놈의 세금, 세금, 세금! 아주 진절머리가 납니다.”

인도 출신이라는 스웨덴 스톡홀름의 택시 운전사는 목청을 높였다. 지난해 12월18일 저녁 아를란다공항에서 스톡홀름 시내로 들어가는 길. 택시비를 신용카드로 결제를 하면 세금 부담이 만만치 않다며 시작한 하소연이었다. 스웨덴에 정착한지 8년째. 그는 “스웨덴 사람들은 정말 어리석은 것 같다”며 “조금만 젊었어도 노르웨이나 덴마크 같이 세금이 낮은 나라로 옮겨서 일을 했을 것 같다”고 말했다.

스웨덴에서 살아가려면 정말 세금이 많기는 많다. 개인들은 소득의 절반 가량을 소득세로 내야 하고, 기업들은 법인세(28%)는 물론 고용주세(최고 40%)라는 특이한 세금을 내야 한다. 근로자를 고용하는 대가로 월급의 일정 비율을 다시 세금으로 납부하는 것. 1.4명분 임금에 해당하는 비용을 지불하고서 근로자 1명을 채용하는 셈이다.

이렇게 많은 세금을 내면서도 지금껏 불평, 불만이 없었던 것은 “낸 만큼 돌려 받는다”는 믿음 때문이었다. 실업을 당하면 실업자 수당으로, 몸이 아프면 병가 수당과 의료비로, 또 나이가 들면 연금 보험으로.

문제는 제도와 시스템에 편승하는 ‘무임 승차자’들이었다. “툭 하면 병가를 내고, 실업자가 되기를 자처하는 수많은 ‘베짱이’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 세금을 낼 수는 없다”는 여론이 들끓었다. 스웨덴사회보험조사위원회에 따르면 경제활동인구(20~64세) 중 병가자, 실업자, 조기은퇴자 등 복지프로그램에 기대어 생활을 유지하는 이들의 비중이 1970년 11.1%에서 2005년에는 두 배에 가까운 20.4%에 달했다. 여기에 공무원, 학생까지 포함하면 53%. 정부 재정으로 먹고 사는 이들이 둘 중 한 명 꼴이다.

2006년9월 여당이었던 사민당이 패배하고 중도우파 프레드릭 레인펠트 총리가 집권을 하면서 대대적 개혁이 시작됐다. 유럽 북구 사민주의 복지모델의 전형이라던 스웨덴 복지모델 시스템이 수술대에 오른 것이다.

부유세 폐지, 실업수당 축소, 병가수당 심사 강화, 봉급생활자 소득세 감면…. 조치는 신속하고, 강력했다. 개혁의 핵심은 ‘많이 내고 많이 받는’ 시스템에서 ‘조금 덜 내고 덜 받는’ 시스템으로의 전환. 대신 일터를 외면하는 실업자들을 취업시장으로 끌어들여 성장동력을 확충하겠다는 것이다.

일자리 창출에 대한 강력한 의지는 정부기관 개편으로까지 이어졌다. 연말을 열흘 앞둔 스웨덴 국가노동시장청(AMS)은 어수선한 분위기였다. 우리나라 노동청과 유사한 정부 기관인데, 새해 1월1일 대대적인 조직재편을 앞두고 있었다. 기관 명칭이 ‘직업안내소’로 바뀌고 조직도 슬림화할 예정이었다. AMS 간부 스테판 쉔바크는 “권위를 벗어 던지고 시장에 더욱 밀참함으로써 보다 효율적인 실업 정책을 펼치라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레인펠트 총리 집권 후 불과 1년여가 지났지만, 효과는 가시화되고 있다. 1년 전 6.3%였던 실업률은 5%대 후반까지 낮아졌고, 2007년에도 3%대 성장률이 예상되고 있다.

이런 일련의 소용돌이를 바라보는 노사의 시각은 분명 대척점에 있다. 스웨덴 최대 노조연맹으로 180만명 블루칼라 노동자를 거느린 스웨덴노총(LO) 간부 안나 프린손은 최근의 개혁 조치를 ‘쇼크’로 표현했다. “레인펠트 총리가 공약 당시만해도 스웨덴 모델을 건드리지 않겠다고 했는데 집권 후 시스템을 위협하는 과격한 개혁을 하고 있습니다. 특히 노조원들이 실업상태에 대비해 적립하는 수당을 3~4배나 올리도록 함으로써 노조탈퇴 움직임이 가시화하는 것은 큰 문제죠.”

반면 우리나라 전경련에 해당하는 스웨덴기업연합 퍼비안 발렌 이코노미스트는 “스웨덴의 문제는 세금압력이 크고, 노동시장 규칙이 너무 까다롭고, 공무원 조직이 비대하다는 것”이라며 “정부의 개혁 조치가 더 세게, 더 빨리 진행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특이한 것은 노사의 시각이 대립적이면서도 서로를 중요한 파트너로 인식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노조와 경영자간의 합의는 스웨덴 경제가 굴러가는데 있어서 매우 중요한 요소다”(스웨덴기업연합) “이미 1900년대 초반부터 사회적 합의와 연대 문화가 자리잡았기 때문에 물리적인 충돌 없이 타협점을 찾아내고 있다”(스웨덴노총)

스톡홀름남대학 최연혁 교수(정치학)는 이런 해석을 내놓았다. “좌와 우가 함께 어우러지는 정치, 노조와 기업이 함께 만들어가는 경제가 스웨덴 복지모델의 핵심이다. 좌파인 사민당이 구축한 복지모델도 결국 우파와 손잡기를 통해 가능했고, 지금의 개혁도 사민당과의 정책 공유가 없으면 불가능하다.” 그는 “스웨덴의 지난 100년 역사가 연정과 타협, 그리고 협상의 역사로 보면 된다”며 “따라서 지금의 개혁적 변화도 ?틀에서 벗어나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같은 대학의 스벤 호르트 교수(사회학)는 스웨덴 복지모델의 근간은 변하지 않을 것이라고 확신했다. “최근의 변화는 세계화의 위협에 맞서 성장을 저해하는 부분들을 조금씩 손 보고 있는 과정입니다. 성장없이는 복지도 없는 것 아닙니까.” 성장과 분배가 균형을 유지하지 않는다면, 국가기반 자체가 무너질 수밖에 없다는 얘기였다.

■ 카이 함머리크 스웨덴투자청장

스웨덴 복지모델을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것 중 하나가 '연대임금제'다. 대기업이든 중소기업이든 동일 노동에는 동일 임금을 지급해야 한다는 것이다. 스웨덴에 값싼 일자리가 거의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런 의문이 든다. '복지 천국' '근로자 천국'에서 기업들이 투자를 하고 싶을까. 이런 고임금 속에서도 스웨덴이 기업 경쟁력을 가질 수 있는 이유는 뭘까. 외국기업 유치 총책을 맡고 있는 카이 함머리크(사진) 스웨덴투자청장을 스톡홀름에서 만나 답을 들어봤다.

함머리크 청장은 "스웨덴의 임금이 높은 것은 한편으로는 맞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틀리다"고 운을 뗐다. "미국은 물론이고 유럽의 다른 나라는 최저ㆍ최고 임금 간 격차가 심하다.스웨덴은 최저임금이 높다지만 최고임금이 상대적으로 낮기 때문에 평균적으로는 큰 차이가 없다"는 얘기였다.

이런 인식은 '기업 선별 유치론'으로 이어졌다. "스웨덴에서 끌어들이고 싶은 업종은 '최고 기업' '기술집약적 기업'입니다. 정보통신(IT) 생명과학기술(BT) 등 지식산업이나 기술산업의 경우 최고 임금이 낮기 때문에 스웨덴에서 더 경쟁력이 있죠." 양질의 근로자로 자신들이 원하는 최고의 기업을 유치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묻어났다.

그는 "만약 낮은 임금의 근로자를 원하는 기업이 있다면 굳이 스웨덴에 오지 말고 중국이나 저임금 국가로 가면 된다"고 했다. 노동집약적 기업을 유치해 봐야 스웨덴의 경쟁력을 높이는 데도 별 도움이 안 된다는 얘기였다.

함머리크 총장은 레인펠트 총리 집권 이후의 변화를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그는 "노동시장에서 제외된 사람들, 즉 실업자나 장기 병자, 외국인을 노동시장으로 적극 끌어들인 것이 가장 핵심적인 변화"라며 "스웨덴 기업 환경을 개선하는데 큰 힘이 될 것으로 본다"고 평가했다. "그간 퍼주기식 복지로 인해서 정말 필요한 사람들은 혜택을 누릴 수 없었다는 게 문제죠. 예를 들어 예전에는 아프다고 꾀병을 부려도 얼마든지 병가 휴가를 받을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정말 아픈 사람들까지 피해를 입게 된 겁니다."

한국에 대한 조언을 구하자, 역시 "조화와 균형"을 얘기했다. 그는 "사회가 발전할수록 성장과 분배의 균형, 기업과 노조의 조화가 중요하다"며 "이는 하루 아침에 이뤄질 수 있는 것이 아니고 장기간에 걸친 사회적 협력 시스템에서 비롯되는 것"이라고 했다.

스톡홀름=이영태 기자 yt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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