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 참패 뒤 민주노동당 안팎에서 새 진보정당을 만들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드세다. 자주파 손아귀에 있는 지금의 민주노동당으로는 유권자들의 마음을 얻을 수 없으니, 분당을 해서라도 새로운 사회민주주의 정당을 세워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런 주장을 펴는 이들은 평등파에 속하는 모양이고, 이들의 진단에 따르면 자주파는 '종북주의자들', '김일성주의자들'이다. 당 바깥 사람으로서, 북한에 대한 자주파의 태도가 종북주의나 김일성주의라고 불러야 할 만큼 반(反)자주적인지는 잘 모르겠다. 그러나 이들의 통일 수사나 북핵 온정주의가 한국인들의 평균적 감수성과 크게 어긋났던 것은 사실이다.
■ 건곤일척의 노선 전환운동을
평양의 봉건 극우정권에 대한 좌파정당 민주노동당의 살가움이 논리적으로나 윤리적으로 얼마나 글러 먹었는지 이 자리에서 다시 거론하고 싶지는 않다. 자주파라는 사람들도 저 자신 북에 가서 살기는 싫을 것이다. <민족21> 화보에 비치는 삶이 북한 인민의 표준적 삶이 아니라는 걸 그들도 잘 알고 있을 테니 말이다. 민주노동당은 평양을 잊어야 한다. 민족21>
평양과의 사업은, 교류협력사업이든 통일사업이든, 곧 들어설 이명박 정부가 그럭저럭 잘 해낼 것이다. 이명박 정부가 너무 엇나갈 경우, 곧 야당이 될 지금 여권 안팎의 민족주의자들이 비판과 질정으로 그럭저럭 바로잡아 줄 것이다. 민주노동당은 평양을 잊고 좌파 정당 본연의 '민생'에 몰두하는 것이 옳다.
그런데 민주노동당을 지금 당장 허물지 않고서는 민생 중심의 진보정당을 만들어 낼 수 없는 것일까? 그러니까 즉각적 분당말고는 방법이 없는 것일까? 그럴지도 모른다.
민족주의 같은 집단적 자기애는 이념이라기보다 생물적 본능에 바탕을 둔 정서 상태여서, 한번 거기 몰입하면 빠져 나오기가 쉽지 않다. 또 당을 이리 만신창이로 만들어 놓고도 그 알량한 비례대표 의원 자리에 저리 집착하는 당권파의 행태엔 이념이고 뭐고 떠나서 정나미부터 떨어진다.
그러나 분당이 그야말로 '최후수단'이 되어야 한다는 것도 엄연하다. 분당은 평등파가 당을 박차고 나가 딴 살림을 차린다는 것이다. 곧, 8년 역사의 민주노동당을 '우리 민족 제일주의자'들에게 고스란히 넘겨주고 더 작은 진보정당을 만든다는 뜻이다.
그것도 선택지 가운데 하나이긴 하겠으나, 공식적 노선전환에 한 번 더 힘을 모을 수는 없을까? 갈라서기는 달라지기보다 늘 더 쉽지만, 갈라선 뒤라 해서 이만한 강도의 내부 갈등이 생기지 말란 법도 없다. 무릇 갈등을 낳는 것은, 이념의 외피와 상관없이, 주로 집단적 개인적 이해관계이니 말이다.
따지고 보면, 통일민족국가 건설은 민주노동당 창당이념 가운데 하나다. 최근 몇 년 새 자주파의 '입당운동'이 아니더라도, 이 당의 민족주의는 그 뿌리가 있었다.
독일사회민주당은 130년이 넘는 역사 동안 여러 차례 노선을 바꾸면서도 그 몸통과 이름을 간직했다. 오늘날 같은 국민정당이 된 것은 1959년 고데스베르크 강령에서였지만, 그 이전에 이 정당은 유사마르크스주의 정당이기도 했고, 전쟁을 지지하는 유사군국주의 정당인 적도 있다.
지금 민주노동당 평등파는 자주파를 제1차 세계대전 시기 독일사회민주당 우파와 비슷하게 여기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그 시기의 분당파처럼 당을 뛰쳐나가 이름에 값하는 진보정당을 만들겠다는 생각일 테다.
심정은 십분 이해하겠다. 그러나 민주노동당의 이름과 몸통을 버리기에 앞서, 민족지상주의를 당의 중심에서 쓸어내는 건곤일척의 노선전환 운동을 벌였으면 한다.
■ 극우파에 기대 선전하는 좌파?
속사정 모르고 분수 넘치는 소리 한 김에 한 마디 더 보태겠다. 분당론자 가운데 일부는 대담하게도 선전투쟁을 극우 신문에 의지하고 있다. 요즘 유행하는 '실용주의'인지는 모르겠으나, 좌파의 기품에 크게 못 미치는 일일 뿐 아니라 궁극적으로 제 무덤 파는 짓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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