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일 경기 이천시 호법면 냉동물류창고에서 일어난 대형 화재의 아비규환 속에 구사일생으로 목숨을 건진 부상자들은 병상에 누워 화상의 고통과 떠올리기조차 싫은 시뻘건 화마(火魔)의 악몽에 몸서리쳤다.
생존 소식에 가슴을 쓸어 내리며 병원에 속속 도착한 가족과 친지들은 온몸에 붕대를 감은 채 신음하는 부상자들의 모습을 보자 안타까움에 눈물을 쏟아냈다.
이날 오후 1시께 서울 강남구 대치동 베스티안병원으로 이송된 안순식(51ㆍ서울 도봉구)씨는 얼굴 전체를 붕대로 감싸고 있었다. 입도 떼기 힘들어 아들이 옆에서 말을 전하며 대화를 도와야 했다. 안씨가 물을 마시는 순간 화재 현장에서 들이마신 화학물질의 검은 재가 목에서 흘러나왔다.
용접 기술자인 안씨는 이날 화재 직전까지 지하1층 기계실에서 동료 6명과 마무리 작업을 하고 있었다. 천정에서 일을 하던 안씨가 공구를 가지러 잠시 내려왔다 다시 올라가려는 순간, “불이야”하는 한 아주머니의 비명 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돌리자 불길이 공기를 빨아들이는 지 온몸이 딸려 들어가는 것 같았다.
안씨는 “무의식 중에 나도 ‘불이야’하고 소리를 지르며 출구를 향해 뛰기 시작했다”며 “막 밖으로 빠져 나오려는데 첫번째 폭발이 일어나 튕겨지듯 넘어졌다”고 고개를 내저었다. 쓰러진 안씨는 그대로 30m를 기었다. “이제 살았구나”하는 생각이 떠오르는 순간 다시 폭발이 일어났고, 무언가 뜨거운 것이 안씨의 얼굴을 덮쳤다.
앞이 보이지 않았지만 무조건 뛰었다. 안씨는 “같은 파트에서 일하던 동료가 6명이었는데 그 사람들 모두 어떻게 됐는지 모르겠다”고 탄식했다.
다른 부상자들은 외부인 접촉이 어려울 정도의 중화상을 입어 이날 화재의 끔찍함을 짐작케 했다. 박종영(35)씨와 심영찬(50)씨는 온 몸에 각각 15%, 35% 정도의 화상을 입고 중환자실에서 치료를 받고 있다.
구로구 고척동 구로성심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는 천우환(33)씨 등 3명도 면회가 되지 않았다. 천씨 아버지 천종길(61)씨는 “3개월 전에 결혼한 아들이 출퇴근하기 좋은 곳으로 회사를 옮긴 지 한달 만에 사고를 당했다”며 “아들이 다쳤다는 소식을 며느리에게 알리지도 못했다”고 눈시울을 붉혔다. 부상자 이경희(50)씨의 동료 김광식(55)씨는 “이씨가 부산에서 일하러 올라왔다 오늘 마무리 작업 뒤 다시 내려갈 참이었다”며 자신의 일처럼 고통스러워 했다.
이태무 기자 abcdef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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