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한 영국 병사의 ‘전선에서 보낸 편지’가 90년 세월이 지난 지금 당시의 날짜대로 인터넷에 올려져 세계적인 화제를 불러 모으고 있다.
영국 일간 텔레그래프는 1차 대전 당시 프랑스와 벨기에 전선에서 종군한 영국군 일병 윌리엄 헨리 본서 레이민의 진중편지가 동시진행형으로 블로그에 게시되고 있다고 7일 전했다. 블로그는 레이민 일병이 종전 후 무사 귀환했는지 여부를 미리 밝히지 않은 채 복선을 깔고 있어 독자들이 그가 전장에서 부친 편지를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읽고 있다고 신문은 소개했다.
레이민의 친손자로 수학, 정보기술(IT) 교사로 일하는 빌 레이민(59)이 블로그를 개설해 지난해 2월부터 90년 전 날짜에 맞춰 할아버지가 가족에게 보낸 편지를 공개하기 시작했다.
그는 할아버지의 유품 등 전쟁 추억을 정성스럽게 모아 블로그에 실으면서 네티즌 수십만명의 주목을 받았고 특히 가족을 전장에 보낸 사람이나 그곳에서 피붙이를 잃거나 다친 이들의 환영을 받고 있다.
빌 레이민은 블로그를 개설하면서 “아버지가 한 살 때 할아버지가 전선으로 떠났다. 그에겐 상당히 어려운 시기였으며 가족은 편지를 기다렸다. 하지만 전사를 알리는 전보가 올까 봐 전전긍긍했다”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편지의 주인공 레이민 일병은 어스워스 노츠에서 1887년 8월 2남2녀의 막내로 태어났으며 더비셔 일케스턴 고교를 졸업한 뒤 중부 공업도시 노팅엄에서 레이스 직공으로 일한 평범한 인물이다.
29세였던 1917년 징집된 레이민은 첫 진중편지를 그 해 2월 육군훈련소에서 부쳤다. 훈련을 마친 뒤 5월 프랑스에 도착했고 다음달에는 최전선 벨기에에 배치돼 독일군과 전투했다.
요크앤랭커스터 연대에 배속돼 메신 릿지, 파스샹달 전투 등 수많은 격전에서 살아 남았다. 블로그의 편지에서는 또 독일군의 전투 장면과 영하의 추위 속에서 담요 세 장과 짚을 이불 삼아 잠을 청하는 모습도 전했다.
그는 성직자인 형 잭 앞으로 보낸 편지에서 자신의 연대가 막대한 인명피해를 입은 메신 릿지 전투에 대해 ‘계속 전사자가 발생하고 있다. 시신을 묻고 또 묻었지만 너무 많아 이젠 그대로 놔뒀으면 하는 생각 뿐’이라고 참상을 묘사했다. 하지만 살벌한 상황 속에서도 영국인 특유의 유머 감각을 잃지 않고 편지 곳곳에 우스갯소리를 적어 고국에서 가슴 죄는 가족을 안심시켰다.
작년 9월 편지에선 적군을 생포하려다 유탄에 맞아 부상한 사실을, 10월에는 밤새 포격을 퍼붓던 독일군이 새벽 5시에 공격해오는 사실을 전해왔다. 블로그에 마지막으로 오른 12월 30일자 편지에서 레이민 일병은 가족에게 크리스마스와 새해를 잘 맞으라는 인사를 하며 빨리 답장을 하라고 당부했다.
1차 대전은 1914년 7월28일 시작돼 1918년 11월11일 끝났다. 앞으로도 블로그에 게재될 편지가 어느날 중단되면 레이민 일병의 신상에 어떤 일이 발생한 것이다. 따라서 그가 과연 건강한 몸으로 고향 땅을 다시 밟아 아내 에델 및 아들 윌리와 재회할 수 있을지 궁금증이 더해가고 있다. 그가 전선으로 출발할 때 한 살이던 윌리는 올해 92세로 애시본의 양로원에서 살고 있다.
한성숙 기자 hans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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