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자본의 은행 소유 허용’ (금산분리 완화)은 이제 기정사실이 됐다. ‘언제’ ‘어떻게’만 남은 것으로 보인다. 그간 금산분리 유지를 주장해 온 금융감독위원회도 결국 입장을 선회했다.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의 의지가 확고한 만큼, ‘키’를 쥐고 있는 재정경제부 역시 같은 배를 탈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3일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업무 보고에서 금감위가 “금산분리 제도의 개선과 보완이 필요하다”고 밝힌 것은 사실상 금산분리 완화를 받아들이겠다는 의미다. 불과 며칠 전만해도 금감위는 금산분리 완화불가입장을 취했다.
김용덕 금감위원장은 취임 직후인 지난해 9월 “은행은 신용을 창출해 공급하는 기관이고 산업자본은 이를 쓰는 곳으로 어느 나라든 산업자본의 은행 소유를 신중하게 접근하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금산분리 완화는 다른 공약들에 비해 정치적 결단의 성격이 짙다. 한반도 대운하 프로젝트나 세금 완화처럼 국가 재정을 걱정할 필요가 없다. 부동산 정책이나 신용 사면처럼 국민들의 생활과 직결되지도 않는다. 최고 의사결정권자의 의지가 확고하다면 충분히 밀어 부칠 수 있는 사안이라는 얘기다.
인수위가 가장 우려하는 것은 금산분리 완화가 자칫 ‘재벌 은행’ 탄생의 제도적 기반으로 비춰지지 않을까 하는 점이다. 이동관 인수위 대변인은 “당선인이 금산분리 완화가 대기업 참여를 보장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는 점을 누누이 밝혀 왔다”고 강조했다.
대신, 중소기업 컨소시엄이나 펀드 등이 은행 지분을 사들일 수 있는 길을 열어줌으로써 국책은행 민영화에 속도를 낼 수 있다는 것이다. 인수위는 당장 우리금융지주의 민영화에 적용될 수 있기를 기대하는 눈치다.
하지만 논란이 쉽사리 가라앉지는 않을 전망이다. 금산분리라는 방화벽이 생긴 것은 산업자본(재벌)이 은행을 사금고화하는 것을 막겠다는 취지였다. 당장은 중소기업 컨소시엄 등에 길을 열어주자는 취지일지 몰라도, 결국엔 재벌에까지 동등하게 기회를 주지 않을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단계적 완화’ 등의 완충 장치나, ‘감독체제 정비’ 등의 보완책을 내놓고는 있지만 충분한 대책이 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김동환 금융연구원 연구위원은 “금융시스템의 위기는 아주 드물게 발생하지만 한번 발생하면 되돌릴 수 없는 상처를 남긴다”며 “세계 각국이 금산분리라는 안전 장치를 마련하는 것도 이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이영태 기자 yt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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